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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님의 서재
  • 경세황비 세트 - 전3권
  • 오정옥
  • 39,150원 (10%2,170)
  • 2014-04-01
  • : 91

경세황비 1~3권.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내용도 참 방대한 소설이다. 오정옥 작가가 18살 때 집필한 소설.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황실 구조나 관습 및 시, 병법 등을 공부했는지, 부분부분 보이는 상세한 설정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정을 잘못 잡은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는 듯 싶다.

경세황비의 주인공은 하나라의 공주 복아다. 복아는 나라를 잃고, 오롯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를 품고서 강단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복아는 참 강한 인물이며, 지혜로운 인물인 것 같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결코 주저앉으려 하지 않으며 외려 스스로를 못매질 하며 강단있게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가. 무엇보다 여인이 손자병법까지 알고 있고, 결코 쉬이 할 수 없는 시, 춤, 노래를 모두 구비하고 있다니! 마복아라는 인물의 영민함과 더불어 그녀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설정이다.

그 설정에 만족하고, 첫 장면부터 의연하며 영민함을 드러내는 복아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어가던 나는, 점차 등장하기 시작하는 남주인공 납란기우와 류연성 및, 사랑이란 이름 아래 복아를 이용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면서 이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메인이라 하는 남주인공들에게 복아의 마음이 흔들리고, 혹은 마복아에게 흔들리는 남주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는 복아의 감정 시점이 조금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납란기우는 명백한 황손이요, 더불어 황위를 잇기 위해 제 어미까지 배신하는 대담함을 보이는 냉혈함을 고스란히 품은 인물이다. 복아의 시점으로 처음 그를 봤을 때 분명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기우가 초반에 복아를 이용하여 제 황권을 틀어잡기 위한 밑밥을 뿌리고 복아가 후에 기우의 뜻을 눈치 채고 분노하지만, 점차 복아 시점의 묘사가 기우를 사랑하는 듯한 묘사로 채워지더니 갑자기 '당신을 증오하는데 사랑한다'는 말에서 조금 당황했다. 물론 복아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되어준 기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나는 그 말을 좀 더 시간을 두고서, 기우와 복아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을정도로 '대놓고' 진행되었으면 좀 더 자연스러운 사랑을 품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이런 아쉬움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읽을 수록 뚜렷해지는 복아의 영민함은 그 나이 치고는 좀 감탄스러울 정도라, 순진한 여주인공들 보다 복아처럼 뚜렷한 자기주관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전 언급했던 부분에서만 감정 이입의 맥이 약간 끊기는 시점을 제외하면, 마복아라는 인물에 대해 호평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 3권에서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게 호되게 일침도 가하고, 끝내 일편단심인 모습에서 여자인 나 까지도 반했을 정도니까!

여주인 복아에게 호감이 제일 가는 한편, 조금 안타까웠던건 역시나 남주인공들이다. 일단 납란기우. 일곱번째 황자로, 계승권에서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것을 저 스스로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영민하고 냉정한, 그러나 결코 날카롭기만 하지 않은 기품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납란기우나 류연성이나, 나라에 군림하는 왕으론, 아니 황제로는 부적합한 것 같다. 군주라면 오롯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경세황비의 남주들은 다 복아한테 돌려놨으니, 그리 복아에 대한 사랑이 진하건만,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군주의 자리에는 완전히 적합하진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 마저 이용해버리는 냉담을 품은 인물들이 후에 마복아라는 여인 앞에서는 제 목숨마저, 제 나라를 뒤로 할 정도로 헌신적이며 애달프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너무 잘되어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경세황비는 남주인공들이나 여주인공들이나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류연성. 솔직히 내가 봤을 때 이 경세황비에서 제일 안타까운 인물이 아닌가 싶다. 물론 복아를 사랑하는 남자들을 일편단심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희생한 여인들의 가슴아픈 모습들도 너무나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류연성이 제일 안쓰러웠다. 손에 들어왔던 복아는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다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니 류연성 입장에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무엇보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입장 때문에 복아에게 헌신적이되, 복아에게 상처입힐까 두려워 섣불리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복아를 제일 아껴주고 사랑해줬다는 걸, 얜 나올 때마다 알 수 있더라. 복아도 그걸 알고 있고. 납란기우가 조금 격정적이고, 군주다운 사랑이라면 류연성은 잔잔하나 강직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류연성이라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기함을 토한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나라와의 전쟁에서였다. 아니, 어떻게, 한 나라의 (당시에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 적군의 병사의 말 하나만 믿고 그걸 듣자마자 좋다고 냉큼 바로 처들어가니. 또 그 영민한 복아는 그게 잘못된걸 알면서도 류연성을 보내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얼마나 기함을 토했는지. 물론 그 장면 덕분에 복아의 지혜가 엿보이긴 했지만 이 장면은 남주의 이미지에 조금 금이 가는 장면이라 생각 되었다.

메인이 되는 이야기는 복아와, 납란기우, 그리고 류연성이지만 이 외에도 경세황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제각각 가슴 아픈, 혹은 설레이는 사연을 품에 안고서 자신이 마음에 품은 상대를 위해서 뒤에서 은밀하게, 혹은 대놓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감싸주고, 도와준다.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이어지지 못한채 끝나버리고 가슴앓이 하다가 허무하게 꽃처럼 져버리거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어지는 그 애잔함과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감성적인 소설이 경세황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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