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일본 관객의 감상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볼 때는 유바바가 “지독하게 나쁜 마녀”라고 생각했는데, 직장인이 된 지금 다시 보니 “일할 의욕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일자리를 주고 신입도 공을 세우면 확실히 칭찬해 줄 뿐만 아니라 진상 고객이 나타나면 상사로서 직접 나서서 물리치는, 경영자적 측면에서 대단히 훌륭한 마녀구나, 생각하게 되었다(끄덕끄덕)”고 적혀 있더군요.
이제 막 취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듯한 일본 관객의 이 센스 있는 감상은 <고양이의 참배>에 등장하는 ‘미다이 님’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작품은 싸우는 소녀와, 선악으로 환원할 수 없는 요괴가 여럿 등장한다는 점에서 얼핏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거든요.
<고양이의 참배>에서 작가는 서로 공명하는 존재로서의 ‘여성=고양이’를 등장시켜 그들이 겪는 괴로움이나 슬픔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고양이 마르코 군(8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자신이 독감으로 심하게 앓아 누웠을 때 간호하듯 옆에 착 붙어서 떠나질 않는 마르코를 보며 “주인에게 닥치는 부정적 요소를 잠재우는 것이 반려동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학대당하는 주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고양이가 요괴로 변해 기막힌 방법으로 복수하는 줄거리를 떠올렸다더군요.
오분이 거대한 ‘강아지풀(일본에서는 고양이 앞에서 흔들면 재롱을 부린다는 뜻의 ‘네코자라시’라고 부릅니다)’에 숨겨진 고양이 신의 궁으로 참배하러 가는 장면은 전편을 통틀어 가장 큰 볼거리입니다. 참배가 끝나자 고양이는 오분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동시에 그 업을 짊어지게 되는데, 작가는 “저 역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고양이의 참배>에 등장하는 요괴들은 (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헤치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했다가 동시에 신비한 힘을 가진 자애로운 신의 모습으로도 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면성을 맨 처음 발견한 건, 아이들이라는 점이 흥미롭지요.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습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요괴=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라는 선입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어린 미기와는 갓파인 산페이타가 마을을 수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터주님으로서 신성시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물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며 물이 있는 곳이라면 (연못이든 작은 물통이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재미있어합니다.
반면 같은 마을의 처자인 어른 사에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고 갓파 산페이타를 어려워하지요. 큰 화재를 피해 산속의 관(저택)으로 피신해 온 마쓰에와 하쓰요 모녀는 수호신이자 산개(들개)인 야마모모와 함께 생활하는데, 야마모모를 경외하는 엄마 마쓰에와 달리 딸 하쓰요는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계와 현실을 잇는 무녀의 역할을 맡은) 아이가 상대해 주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요괴의 진실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품은, 우연히 맞닥뜨린 이계에서 양면성을 가진 요괴와 공명한 소녀가 요괴의 도움을 받아 '고통스러운 세계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복수'를 완성하는 이야기, 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식을 애도하지 않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원망하는 며느리, 비열한 악당에게 습격당하는 마을 처자, 희대의 악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모녀의 복수극. 저는 그렇게 읽었는데 어떨지. 아울러 800페이지 분량의 한 권을 통틀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요괴가 등장하는 역대급 요괴물이라고 할까. 이런 점들을 눈여겨봐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