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늘 ‘복면작가’라는 레테르가 따라다닙니다. 지금껏 나이도, 성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으니까요. 한데 듀나 작가처럼 철저히 베일에 싸인 게 아니라 대충대충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학창 시절 모습이나 데뷔 전후로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알 수 있어요.
도쿄대 공학부에 진학한 그는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를 읽다가 이공계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에서 유전정보공학을 전공으로 삼습니다. 메피스토 상을 수상한 데뷔작은 탐정들이 펼치는 추리를 수리논리학자가 검증하고 뒤집어 버린다는 내용으로 대학(대학원) 시절의 공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그 전까지 추리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을 텐데 왜 데뷔작으로 추리소설을 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추리소설은 이공계 논문과 비슷하다. 문제 제기가 있고 그에 대한 가설이 있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같기 때문에 그 형식을 따라가다 보니 별로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
아아, 이공계 논문과 형식이 비슷해서 추리소설을 쉽게 쓸 수 있었다니 실로 참신한 관점이네요. 작가 이노우에 마기(필명)의 추리소설들이 각종 차트를 석권하고 독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까닭은 기존 작품들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설정 덕분일 겁니다. 예컨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라는 아이디어 같은 건 아무나 떠올릴 수 없겠죠.
작가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최고조로 발현된 작품이라면, 현시점에서는 단연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시작은 얼핏 단순해 보입니다. 어느 날 두 군데 매체로부터 동시에 연재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던 겁니다.
만약 저라면 이 매체에는 A라는 소설을, 저 매체에는 B라는 소설을 써서 보내겠지만 이노우에 마기는 역시 (긍정적 의미로) ‘또라이’ 같은 작가니까요. 모처럼의 기회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두 매체 동시 연재라……. 뭔가 서로 연동할 수 있는 작품을 써보면 어떨까. 그러다가 떠올린 것이 “같은 사건인데 각각 완전히 다른 추리가 전개된다”는 구조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텐데 그 작품은 여성작가가 여성의 시각으로, 남자작가가 남자의 시각으로 쓴 거니까요.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는 한 작가가 같은 사건을 두고 여성의 시점으로 추리해서 한 권, 남자의 시점으로 추리해서 또 한 권을 썼으니 다르죠.
게다가 두 권이 한 챕터씩 링크되어 있어 번갈아 읽어야 하는데, 이 아이디어는 아마 세계 최초일 겁니다. 저도 만들면서 많이 배웠어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편집자 후기에 적어놓았으니, 아이디어 보릿고개에 시달리는 형제자매님들이라면 한 번 거들떠봐 주셔도 좋겠습니다.
덧)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는 두 출판사의 공동 출판 프로젝트로 은행나무에서 '형제 편'을 북스피어에서 '자매 편'을 출간하였으며 어느 쪽 이야기를 먼저 봐도 상관없도록 번역과 판형과 디자인을 통일하여 제작했습니다. 원서 두 권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왜 한국에서는 은행나무가 한 권, 북스피어가 한 권을 각각 출간했는지, 그 경위에 대해서도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편집자 후기에 적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