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건 전부 남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벌었다기보다 돈이 통장으로 굴러들어왔다, 라는 느낌이었지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저는 마포구청역 인근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당초 계획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평생 거주할 요량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출판사 사무실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 직전, 번아웃으로 고생하던 저는 이사를 결심하고 아파트를 내놓았습니다.
전혀 몰랐어요. 10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자가 나타나더군요. 이른바 ‘영끌’로 구입하는 거라면서 두말없이 대금을 입금해 주었습니다. 통장에는 지금껏 만져보지 못한 액수가 찍혀 있었지요. (어디까지나 제 관점에서)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며 처음 느낀 감정은 허탈함이었습니다. 그동안 죽을힘을 다해 출판사를 운영하며 벌었던 돈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한방에, 이토록 쉽게, 가질 수 있다니.
한데 몇몇 지인들에게 그런 감정을 토로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너 그 돈 어디에 쓸 건데?” 이러저러한 물건이 있는데 투자해봐. 요즘 어느 지역 땅이 뜬다더라. 한국은 역시 부동산이야. ...다들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나서야, 부동산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고, 관련 동영상을 몇 개씩 구독하며, 실제로 경매에 참여해 돈을 버는 지인도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전세 사기 관련 뉴스가 매일매일 보도될 무렵이었지요. 퍼뜩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부동산 사기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 같은 걸 출간하면 이 사회에도 조금쯤 도움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분명히 썼을 텐데. 그래서 영미권과 일본어권 사이트를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있더군요.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블랙 부동산 업계를 묘사한 데뷔작으로 스바루 문학상을 받고 이후로 관련한 작품을 써온 작가가.
신조 고(新庄 耕)의 이력은 무척 특이한데 《현대 비즈니스》에 실린 인터뷰에 그중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소위 ‘불량청소년’들이 많았다. 10대 후반에는 그들과 매일같이 클럽에서 놀거나 폭행으로 소년원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만화책 같은 걸 기분 전환용으로 읽었지만 공부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클럽에서 놀 때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당시 중심가에는 불법 마약을 파는 외국인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나는 매직머쉬룸 같은 걸 사서 먹고 시부야의 클럽 등에서 춤을 추고 다녔다. 이때의 트립(마약을 복용한 뒤의 환각) 경험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력과 마약으로 점점 몸을 망치는 선배들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력 서클을 나온 뒤에 마약도 끊고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12시간씩 책상에 매달렸다.”
결국 주변의 조롱을 딛고 3수를 한 끝에 게이오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신조 고가 지금껏 쓴 소설은 전부, 하나같이, 몽땅 다 악당이 주인공입니다. 악덕 부동산에 취업하여 ‘흑화’돼 가는 청년(『협소주택』), 마약 카르텔의 일원(『뉴 카르마』, 다단계 판매 조직원(『살라레오』)처럼 사회에서 이탈한 자들을 전면에 등장시켰지요. 이는 전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일 겁니다. 뱀의 길은 뱀이 아는 법이라고 할까.
그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타인의 부동산을 이용하여 돈을 가로채는 사기꾼 집단, 이른바 ‘지면사(地面師)’들을 추적한 『도쿄 사기꾼들』입니다. 한국에도 보도될 정도로 파장이 컸던 ‘세키스이하우스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면밀한 취재를 통해 그들의 조직적인 범행을 압도적 리얼리티로 완성시킵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 중 하나죠. 그에 따라 보이스피싱이나 방문판매의 표적이 되는 등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더군요. 지면사(地面師)란 타인의 부동산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자, 즉 부동산 사기꾼이며 신조 고의 소설 『도쿄 사기꾼들』은 바로 이러한 노인의 부동산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부동산 사기 계획을 지휘하는 지면사,
정보를 수집하고 타깃을 물색하는 도면사,
소유자를 사칭할 배우를 고르고 교육시키는 수배사,
서류와 인감을 만드는 위조범과 돈을 세탁하는 전문가까지,
이들이 상대를 속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실로 용의주도하여 감탄이 나올 정도인데...
저는 정말 숨도 못 쉬고 읽었습니다. 사기 치는 걸 바로 옆에서 몰래 관찰하는 느낌이었어요. 들킬까봐 조마조마. 이런 걸 전문용어로 후달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됐을 당시 언론에서는 “자신이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어둠의 존재는 모르기보다 알고 있는 편이 좋다. 읽어두는 것만으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자기방어’가 될 거 같다”라고 보도했는데, 이런 어둠의 존재에 대해 궁금하다는 형제자매님들이 꼭 한 번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삼송 김 사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