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세월호의 침몰이,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인정한 사건이 있었던 그 이듬해, 저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더없이 쾌청한 날이었어요. 제가 인터뷰를 위해 “녹음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대단히 불행하고 슬픈 일이 있었잖아요. 세월호 사건이요.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 저는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서운 일을 겪었을 때 한국의 독자들이 진심으로 저희를 걱정해 주셨듯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뉴스만 봤습니다. 정말 슬픈 사건이었으니, 여러분도 무척 괴로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요즘 두
나라 사이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인데요, 언제나 저희 책을 읽어 주는 한국 독자 분들에게 일본의 정치가가 실례되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저희가 쓴 신간이 나오면 읽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꼭 말로 전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시간이 꽤 흘러 인터뷰 당시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날 들었던 위로와 사과는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소설에 사회적인 시선을 담아서 써온 작가의 어조가 그만큼 진지하고 담백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립서비스겠지 하고 여기면 그뿐이지만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약간 뜨거워집니다.
일본의 경제 제재 이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위안부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양국의 관계가 또 파탄으로 치닫겠구나 싶은 요즘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와중에 출간한 『가모 저택 사건』은 상당히 각별하게 느껴지더군요. 대관절 무엇이 각별했는가.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인 2.26사건은, 파쇼적 우익 사상에 전도된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 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군부의 영향력이 커지고, 급기야 전쟁을 일으켜 여러 나라들에 막대한 고통을 안겼던 것이죠. 이 사건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26사건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으니까요.
독자들 대부분이 모르거나 어렵다고 여길 만한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수험을 준비 중인 고등학교 3학년인데 ‘한창 역사를 공부할 나이의 수험생’이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현대사에 무지하거든요. 왜냐.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대학 진학을 위해 스테레오타입한 역사적 지식만을 암기시키고 한일 양국의 문제를 비롯한 현대사 공부는 제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역사 교육을 비판하고 싶었던 걸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울러 (1) 역사는 바꿀 수 없다. (2) 이미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해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는 역사 수정주의는 위험하다…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가모 저택 사건』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던 이 소설을 다시-지금 복간한 까닭은 우선 독자들의 요청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한일 관계가 이 꼴은 상황에서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얘기하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한 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싶었서입니다.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서 소설의 마지막에 쓴 편집자 후기도 시간 나실 때 거들떠봐 주시면 참으로 기쁘겠습니다.
삼송 김 사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