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관절 왜 제목이 인내상자(堪忍箱)인가.
뚜껑을 열지 말고 참아야(인내해야) 한다,
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에 얽힌 이야기니까.
2
그에 발맞추어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마음속에 단단히 봉인해 두고 살아가는데.
3
그 비밀을 둘러싼 인간들의 사연은
처음 읽을 때는 애틋하지만, 다시 읽으면
마치 오꼬노미야키 위에 부처님 형상의
자국이 생긴 걸 목격한 것처럼 놀라게 됨.
4
왜냐면 지금까지의 미야베 미유키 소설 가운데
미회수 떡밥과 복선이 가장 많은 작품이거든요.
이걸 꿰어 맞추면 놀라움이 무서움으로 바뀝니다.
5
슬프고 애틋한데, 한편으로는 무서움...
일본에서는 이를 ‘인정호러’라고 하더군요.
다들 참 말도 잘 만들어 냄.
6
그건 그렇고,
이 정도 설명을 들으니 약간 설레시지요.
7
인간의 노화는 몸보다 감정이 먼저 시작된다고 합니다. 감정이 노화되면 매사에 짜증이 나고 뭘 해도 즐거운 기분이 줄어드는데다 만사가 귀찮아지게 마련이지요. 일종의 번아웃 같은 것. 하지만 감정의 노화는 ‘설렘(설레임 아님)’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8
오랫동안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신작을 기다려 온 형제자매님. 제가 여러분의 노화를 살짝 늦춰드렸다는 걸 좀 기억해 주셔야 해요.
9
“누구에게나 숨기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는 법이고, 두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세 가지가 있으면 더 많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지. 자, 오린 너는 이제 그만 자렴.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을 테니 부채는 필요 없을 거야.” 이 대사를 살짝 인용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있으면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잘 수 있으니 부채는 필요 없지, 라고.
10
아참,
책의 말미에 있는 엽편 소설 분량의 편집자 후기는 반드시 본문의 읽기를 마친 후에 거들떠봐 주시길.
이상,
그야말로 셀렘을 가득 담아 편집에 임했던
김 사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