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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님님의 서재
  • 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 사라 피어스
  • 17,820원 (10%990)
  • 2025-07-22
  • : 2,229
스위스 알프스 고산지대, 눈보라 속에 숨은 외딴 호텔 ‘르 소메’. 게다가 이 호텔은 과거 요양병원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장소다. 고립, 설원, 병원—이 세 요소가 주는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클래식한 스릴러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이런 배경 설정은 개인적으로 무척 익숙하다. 어릴 적 탐독하던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에서도 자주 등장하던 공식이다. 설원 속의 폐쇄 공간, 끊긴 교통, 한 명씩 사라지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서 “김전일만 피하면 안 죽는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처럼 고전적이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인 설정은, 여전히 독자들의 긴장감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자극한다.사라 피어스의 데뷔작 《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은 그런 점에서 출발부터 강렬했다. 나는 이틀 만에 단숨에 읽었다. 스위스 산속에 고립된 인물들, 눈보라와 끊긴 연락망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초반부터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가는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난다.주인공 엘린 워너는 단순한 형사가 아니다. 어린 시절 막내 남동생 샘을 잃고, 그 비극적인 기억을 마음 깊이 묻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려 형사 업무에서도 휴직을 낸 상태다. 그런 그녀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증오하던 또 다른 남동생 아이작의 약혼식.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복잡한 감정과 억눌린 기억이 뒤엉켜, 엘린은 본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뭔가에 이끌리듯 그 호텔로 향하게 된다.이처럼 엘린은 전통적인 추리소설 속 탐정처럼 냉철하거나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불안정하고, 자기 확신이 부족하며, 누구보다 흔들린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녀는 뛰어난 추리력이나 천재적 직감이 아니라, 스스로와 싸우며 진실에 다가간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틀을 빌린 심리 스릴러'라고도 볼 수 있다.많은 리뷰에서 이 소설을 두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히치콕의 [싸이코],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언급하며 비교하지만, 나는 사라 피어스의 색깔은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물론 그 작품들이 주는 분위기와 장르적 유산을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피어스는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사건을 확장시키는 쪽에 더 집중한다. 과거의 대가들과 비교해 우열을 논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에 걸맞은 감정의 리듬을 따라간다는 인상을 받았다.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원서에는 본 소설이 ‘엘린 워너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지만, 국문판에는 그런 정보가 없다. 이로 인해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암시되는 장면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독자들이 시리즈로서 작품을 더 애정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이 상처를 껴안은 채 삶을 다시 걸어가는 이야기다. 그 배경이 눈 덮인 산속이라는 점에서, 엘린이 걷는 눈 위의 발자국은 그녀가 겪어온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꽁꽁 얼어붙은 설원 속에서, 어쩌면 진짜로 ‘유리 빛’ 같은 순간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다.#독서기록 #유리빛이우리를비추면 #사라피어스 #추리소설 #엘린워너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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