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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j1821님의 서재
  • 플루언트 포에버
  • 게이브리얼 와이너
  • 14,400원 (10%800)
  • 2017-05-30
  • : 638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죽기 전에 경험해고픈 일이 몇 가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여러 나라의 도시들에서 살아보기'가 그 중 하나이고, 특히 독일의 베를린에 가장 애착이 간다. 전통과 장인정신이 존중받는 곳, 합리적인 국민성, 무엇보다도 잘못된 과거사를 끊임없이 반성하며 기억하는 태도 때문이다. '언젠가는 베를린에서 살고 말 것이고 잘 살기 위해선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단순한 사고 하나로 초급 독일어 교양 수업을 듣기도 했다. 비록 명사에 성(姓)이 세 개나 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언어체계에 바로 겁먹기는 했지만. 수업을 두 번이나 수강했지만 학기 중에만 공부를 해서인지 여전히 관사변화표를 옆에 두지 않고는 한 문장도 완성할 수 없었다.

  저자는 오페라 가수라는 직업상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단기간에 자연스럽게 발음해야 했다. 책에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경험한 그의 모든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곧 그가 터득한, '외국어를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 멋진 도구'를 통해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전수하는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실천이 따르는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독자들의 행동이 없다면 공허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효율'을 따질 뿐만 아니라 '재미'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플래시 카드, 금지 놀이, 연상 기억법, 모국어 화자들과의 적극적인 상호교환 수단 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공부법의 핵심이 되는 도구는 바로 '플래시 카드'이다. 간단히 말하면, 앞면엔 공부하는 언어의 단어를 적고, 뒤에는 뜻풀이를 적는 것이다. (앞, 뒷면의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단어 대신 문장이 올 수도 있고, 그림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이 플래시 카드를 이용해 SRS(간격반복시스템, Spaced Repetition System)을 활용하면 벌써 절반은 따라한 것이다. 간격 반복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얼핏 어렵게 들리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기억할수록' 더 효율이 높아지는 우리의 기억력 체계를 확실히 이해하는 데에 바탕을 둔 단순한 학습법이다.

     '게으름'은 '효율성'의 또 다른 이름이다. (52p.)

 

  책의 초반부터 저자는 몇몇 근거를 들어 '과잉학습'을 지양하고 나선다. (인용한 저 문장을 읽고 나서 얼마나 용기가 났던지!) 매일매일 배웠던 모든 단어들을 반복해서 암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가 잘 기억하는 단어들은 미루고 그렇지 않은 단어들은 더 자주 노출함으로써 언어 학습이 '나'의 수준으로 맞춰진다. "언어 학습은 씨름이 아니라 교감이다"라는 가치관 아래, 저자는 '나'와 '내가 공부하는 언어' 사이의 개별적 기억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과의 추억이 유독 기억에 남듯이, 언어라는 것도 어떤 기억을 매개로 해서 교감하느냐에 따라 나의 머릿속에 오래 새겨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간격 반복 시스템이라는 '기계적' 체계와 플래시 카드라는 '나에게 의미 있는 기억' 체계를 합함으로써 뇌의 화학작용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학습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끝낸 나는, 저자가 정리한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 625개를 독일어로 찾아 플래시 카드를 만들고, 한 달 전쯤 결제했던 회화 위주의 가벼운 인터넷 강의를 병행하며 가을에 있을 자격증 시험을 대비하려 한다. 문득 만 23세가 지나면 외국어를 구사하는 혀가 굳는다는 말이 떠올랐고 어느새 그 마지노선에 와 있다. (그러나 책에도 나와 있듯이 외국어 학습에는 정해진 이상적인 나이가 없다.) 할 거면 확실하게, 그러지 못 할 거면 시도조차 아깝다고 여기는 나의 극단적 기질이 이번이 마지막 시도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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