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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님의 서재
율곡 이이,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

신진들은 구신들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척신 체제와 구신들 개인의 인격을 동일시했다. 제도와 그 속에 있는 개인을 구별해서 보기에는 구체제의 파행이 너무 심각했고, 신진들은 너무 젊었다.- P68
요컨대 그전에는 정치란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정치 세력이 교체된 뒤, 이이는 비로소 ‘사람의 문제‘에서 ‘방법과 태도‘의 문제로 경세의 방법론을 전환했다.- P93
이이는 동료 관료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찌 보면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이가 요청한 민생 정책들은 향약처럼 사대부들의 경험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은 생활 공간을 달리하는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정도로 강한 지각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더구나 이이가 주장한 것들은 아주 오랫동안 국가의 정책 현안에서도 빠져 있던 문제였다. 국가는 정책을 통해서 백성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이 국가 존립의 일차적 이유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 잊힌 지 오래였다. 조정의 관료 중 누구도 이런 종류의 문제를 다루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심지어 이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이이도 필요한 정책 현안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그 정책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제시할 수 없었다.- P98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정 동료들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조문한 예가 두 사람 나온다. 한 사람은 이이이고, 또 한 사람은 김육이다. 이이는 공물 변통을 체계적으로 주장한 사람이고, 김육은 공물 변통을 실제로 성립시킨 사람이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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