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이 소설은 처음부터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 남는 온기가 있었다.
『오로라 맨숀』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버려진 이후에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였다.
보육원에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더 아픈 건, 그 이후에도 계속 버려질까 봐 애써 자신을 지워야 했던 한 사람의 삶이었다. 혜성은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 거짓은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소설은 그 선택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진실보다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라고.
이야기는 월급을 받지 못한 청년, 사망한 사장, 그리고 김치를 담그는 한 노인의 만남으로 흘러간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삶의 결이 먼저 다가온다. 그래서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깊다.
본문(줄거리)
혜성은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그대로 살지 않았다. 버려졌다는 기억은 마음을 좀먹었고, 대신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생에게만큼은 ‘우리는 버려진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거짓말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성실함이었다. 혜성에게 성실함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성인이 된 혜성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말이 적었고, 불평도 적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6개월간 밀린 월급과, 끝내 사망해버린 사장이었다. 책임은 사라졌고, 문제는 남았다. 혜성은 그저 당연한 것을 받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그는 복자 할머니를 만난다. 이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복자 할머니는 친절한 어른의 전형은 아니었다. 다정하지만 날카롭고, 따뜻하지만 현실적이었다. 할머니는 혜성에게 연민을 먼저 주지 않는다. 대신 일을 맡기고, 김치를 맡긴다. 여기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은유로 등장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필요하며,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것. 혜성은 김치를 통해 처음으로 ‘기다림이 허락되는 삶’을 경험한다.
혜성의 성실함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김치를 대충 만들지 않는다. 할머니의 방식을 배우고, 반복하고, 실패를 견딘다. 누군가는 단기간의 성과를 원하지만, 혜성은 오래 묵히는 쪽을 선택한다. 이 성실함은 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끌어당긴다. 조급한 사람, 계산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혜성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혜성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천재도, 극적인 반전을 만드는 주인공도 아니다. 다만 그는 계속해서 자기 몫을 해낸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속이지 않기 위해, 대충 살지 않기 위해 선택을 반복한다. 그 반복이 쌓여 삶이 된다. 『오로라 맨숀』은 그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다가온다.
마무리
『오로라 맨숀』은 성공담이 아니다. 대신 성장담이다.
그리고 이 성장에는 속도가 없다. 혜성의 삶은 겉절이처럼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묵힌 묵은지에 가깝다. 한동안은 상한 것처럼 보이고, 실패처럼 보이고,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 시간들이 모두 필요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한다.
인생은 진실만으로 버텨지지 않을 때가 있다고.
때로는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그리고 성실함은 언젠가 반드시 누군가의 장독을 만난다고.
혜성은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남는다.
지금 당장은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묵히는 시간 역시 삶의 일부라고.
그리고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