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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아이디출판사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 과학자의 철학노트>
회사에서 인사 담당을 하다 보면 신입 사원들에게 이래저래 몸에 좋은 약(藥)과 같은 이야기를 해 줘야 될 때가 더러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내 스스로 낮은 자세를 취하며 ‘개똥철학’이라고 치부하지만, 실은 그와 같은 얘깃거리가 필요할 때가 꽤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사촌 형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까지도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게 될라치면 이런, 저런 류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꼭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처럼 자기 자식에게도 말을 못하는 때가 되고 보니, 어찌 보면 피차 간에 자유(自由)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이 ‘우리들 모두를 자유롭게 했느냐?’ 하면, 그건 ‘글쎄올시다’이다.
말하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으면 피차 간에 ‘자유’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도스토옙스키가 그의 역작 <죄와 벌>에서 자유에 대하여 말한다.
자유는 기쁨과 사랑, 관계, 이 세 가지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을 통하여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내가 신입 사원에게 들려주는 테마는 모두 24개로 이뤄져 있다. 노자, 장자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쥐똥나무의 辯,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 황새냉이 이야기, 수우미양가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주로 ‘나’, ‘소중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너’, ‘우리’와 같은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테마를 준비하게 된 배경은 지금의 세대들(무어라 지칭하는지 모르겠다)에게는 ‘관계’가 무척 낯선 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소신대로만 말하자면, 그 관계의 시작은 ‘자기 사랑에서부터’라고 하겠다.
이 책, 플라톤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랑은 바로 에로스.
다만, 여기에서의 에로스는 (한정적인) 육체의 쾌락을 뛰어 넘어 다양한 각도에서 다뤄진다.
명예심과 용기의 덕을 고취하는 에로스, 영혼의 덕을 함양하는 에로스, 모든 존재의 형성 원리가 되는 에로스,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이 되는 에로스, 결핍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 출산을 통해 이러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고.
당신은 어떠한 에로스를 탐닉하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결핍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이라는 데에 깊은 공감이 간다. 무언가를 채움으로써 완전케 하고픈 평소의 철학이 이곳에도 있다니. 그게 바로 플라톤이라니.
그간, 같은 주제(사랑)를 가지고도 동양철학의 배경만 얘기한 탓에 치우친 느낌이 다분했는데 이 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갖출 수 있게 된 뿌듯함이 있다.
또,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보자.
어느 날, 여름 하늘의 퇴근길이다.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잠은 오지 않는 그런 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인근 공원에 잠시 앉아 잠시 동안의 여유를 즐겨본다.
때마침, 하늘에서 수런수런 하는 소리가 나서 올려다 보더니, 아뿔싸!
날개 달린 하얀 말이 하늘을 달리고 있고, 그 말 위에는 어떤 이가 앉아 있으며 그 무리가 하늘 이 편 경계에서 저 편 경계까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영화 <엘리시움>의 장면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하늘의 경계를 내달리고 있는 말 위에는 영혼이 고결한 사람이 타고 있다. 이 책에는 ‘영혼의 세계를 가장 잘 보았던 사람들’로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 사랑을 구하는 사람과 같이 이 세상에 없는 것을 구하는 사람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러한 무리에 속해서 저 즈음의 어딘가를 내달려 보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가?
적어도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정도에 내가 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난데없이 하늘의 경계를 달리고 있는 말은 무엇이며, 영혼이 고결한 사람은 무엇인가 말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 있음을 가만히 깨닫는다면 오늘 이 시간을 함께 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위에서 서술한 부분은 <파이드로스(플라톤)>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이데아의 모습인데, 이제 내 관점(눈높이)으로 가져와 다시 한번 되짚어 본 것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영혼의 세계를 가장 잘 보았던 사람, 그 사람은 대체 어떠한 사람일까?’하는 물음은 책을 읽는 내내, 내 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떠한 사람이라야 할까?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저 유명한 <고디바의 여인(Lady Godiva)>까지 가서야 멈출 수 있었다.
아, 저러한 여인이 내달리는 하늘의 경계라면, 그걸 이데아라고 해도 좋다. 거기에 그 사람이 달리고 있다면 나도 함께 달리고 싶다고.
‘평소 자네의 철학을 얘기해 보라’ 하면 그것만큼 상대방을 난감!하게 할 질문도 드물겠다.
그에 앞서 ‘내 철학은 무엇일까?’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면,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의 수 십 명의 철학자들 중 어느 편에 나를 넣어야 될 것이냐 말이다.
잠시 잠깐이라도 자신을 사유하고 더듬어 보자. 어쩌면 당신은 이미 이데아에 속하여 그 경계를 날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을 터.
미리 (못났다고) 예단치 말고, 좀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이 좋은 가이드가 될 테이니.
덧) 이 책, <과학자의 철학노트> 제호 위에는 조그맣게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가 새겨져 있다.
철학이 난해한 것도 아니고, 난감이라니.
난감을 쓴 이유가 따로 있겠고, 그것이 바로 철학이렷다.
덕분에 나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도 오랜만에 찾아 듣고, 이데아와는 또 다른 이데아, 즉 용궁의 세계도 회유(回遊)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