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茶山의 하늘을 바라보다>
지난 2016년 9월 세계경제포럼은 OECD 국가 중 가장 부패정도가 심한 11개 국가를 선정했는데, 우리나라가 9위로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6년 부패인식지수(CPI)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76개 국가 중 52위로 아프리카의 르완다보다 낮은 수준이다.
뉴스에서 공직자의 비리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이 둔감해 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 IT강국, 국민소득 3만불의 선진국 진입을 이야기하는 나의 조국이 부패에 대한 영역에서는 중·후진국 수준인 현실에서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목민심서는 어진 일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결과나 효과가 나온다는 다산의 실학적 주장이 담긴 명저이다.
부패가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 상태와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지역에 부임한 고을 수령이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일을 모아 48권 16책으로 남긴 것이다.
다산은 올바른 목민관이란 백성들의 생활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문제를 알아서 정성껏 보살펴야 하며, 사랑과 애정으로 백성을 돌보아야 할 것을 제시했다.
애민을 실천했던, 노력하는 천재인 다산은 정조와의 어수지계로 승승장구 벼슬길이 트이기도 했지만, 숱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산은 세상을 고치고 바꾸기 위해 힘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은 열심히 공부하여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초봄에 진사과에 합격해서 학자임금 정조와 첫 대면을 하는 영광을 안는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높은 수준의 학문에 이르러야 자신이 열망하는 일들(애민)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과거공부에 매달리고 최선을 다했다.
출세를 위한 출세욕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다산은 게으를 수 없었던 것이다. 진보 노선, 변혁의 방향, 세속적인 만족과는 다른 한 단계 높은 새로운 추구, 그러한 변화 욕구는 다른 새로움에 마음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뭔가 색다른 것을 얻어내려는 열망에 다산은 서학(西學)에 깊이 빠지게 된다. 천주학으로 인해 서양사상을 섭렵해 다산 사상의 폭이 넓어진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반대로 쓰라린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다산은 암행어사 시절 궁중 어의(御醫) 출신으로 권세가 막강했던 강명길군수와 임금 가족의 묏자리를 잡는 지사(地師)출신으로 왕실과의 유대가 깊은 김양직현감의 탐학스런 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을 비호하는 조정 대신들이 가로막았으나, 다산은 “법의 적용은 임금의 측근부터 시작해야 하며, 민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국법을 존엄하게 해야 한다”면서 다시 상소를 올려 탐관오리들을 준엄하게 의법처리토록 했다.
또한, 황해도 곡산 도호부사로 부임했을 때 관리의 불의에 항의하다 죄인으로 몰린 이계심사건에 대해서, 중앙정부의 대신들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정의 분위기도 주동자 몇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까지 합의한 사건인데도 다산은 양심과 법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오히려 이계심의 의로운 행위를 극찬까지 했으니 220년 전 봉건왕조 절대군주주의 시절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다산의 강직함과 정의로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다산은 정조라는 현명한 군주를 변혁의 주체로 여기며 역사의 발전을 도모했다. 보편적이고 고유한 민족문화를 끌어올려 공정하고 진실되며, 세상에서 압박받는 백성들이 정당한 삶을 살아갈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것이 그가 하늘에 그린 그의 세상이었다.
재상의 재목을 알아주던 정조는 왜 그렇게 갑자기 새상을 떠나야 했나? 정조 같은 군주는 다시 나오지 않았고, 채제공 같은 후원자도 다시 나오지 않아 그의 개혁의지는 끝내 좌절되어 현실정치에 반영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산은 아픔과 시름에서 벗어나 진정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는 마치 뒷세상을 기다리듯 묵묵히 길고도 긴 저술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예리한 비판정신을 지닌 학자답게 자신의 처지는 자신을 둘러싼 문제의 해결로 종결되지 않고, 사회적 모순과 시대적 갈등이라는 본질적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은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해 모순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쉰일곱 살의 다산은 유배생활에서 지친 심신의 노고를 풀기보다는 일흔 다섯 살로 영면할 때까지, 유배지에서 구상하고 계획했던 그의 사상과 철학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당대의 석학들과 새롭게 교우하면서 높고 깊은 학문적 토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산의 삶의 모습은 세상을 향해 다시 날개 짓 하는 인생 2막에 의미와 도전을 준다.
박석무저자의 책은 다산에 대한 많은 연구와 고뇌가 있는 책이다, 다산의 삶에 대해 깊이 알기를 원하는 독자는 일독을 권한다, 다만, 가끔 저자의 생각이 지나치게 서술되어 있고,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로 본인의 심경을 토로하는 부분은 살짝 거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