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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미님의 서재
  • 먼지가 가라앉은 뒤
  • 루시 이스트호프
  • 19,800원 (10%1,100)
  • 2025-09-26
  • : 1,715

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 직후의 긴박한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시간을 다루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재난을 뉴스 화면 속 한 장면으로만 기억하지만, 저자는 그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삶과 복구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책의 첫 장에는 저자가 이 책을 친인척이나 친구가 아닌 재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그 문장에서부터 이 책이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인상 깊었던 문장은 “환상 속에는 늘 계획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늘 계획과 다른 현실이 닥친다.”(p.12)였다. 재난이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 아무리 철저히 대비하더라도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저자는 재난 대응 전문가가 아닌 재난 복구 전문가로서, 재난 직후 몇 시간이나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을 바라보며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재난 직후 몇 시간, 며칠, 몇 주를 넘어 몇 달, 몇 년을 바라보는 것”(p.15)이라는 문장은 그녀의 일과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읽는 내내 ‘재난 이후’라는 시간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재난은 단순히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 오랫동안 이어지는 슬픔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뉴스로 접하는 재난조차도 한동안 마음이 무겁고 일상에 영향을 주는데, 재난을 직업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까 생각하게 된다.


이스트호프의 시선은 감정적이기보다 현실적이다. 그녀는 재난을 극복하자는 낙관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대신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는 냉정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 사실이 잔혹하게 느껴지면서도, 어쩐지 인간적이고 위로처럼 다가왔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을 다루지만,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상실과 애도,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담담하게 그린다. 재난의 순간을 기록하는 책이 아니라, 재난 이후의 시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읽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깊어지고, 타인의 고통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재난, 신체의 연약함, 상실과 애도에 관한 책이다.” (p.17)


이 문장처럼,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삶의 무게를 마주할 용기를 조용히 건네주는 책이다.

#재난 #복구 #먼지가가라앉은뒤 #루시이스트호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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