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일본 우익의 역사이긴 하지만 일본 우익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조선의 불행과 중첩되는 과정이고, 역사의 불행은 곧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갈 때 힘든 원인은 병, 가난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들 못지 않게 큰 것이 인간관계이듯 주변국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의 꿈, 우익화는 우리에게 피로감과 감정대립을 촉발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우익 단체의 혐한 난동을 한줌 세력의 “준동”이라고 폄훼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정신승리로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들의 기류가 일본 정치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현재 일본정치의 리더쉽은 극우인데, 자민당과 아베 정권이 교과서의 역사를 바꿔 자신들의 과오를 정당성으로 바꾸고 왜곡된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면 우익단체들의 목소리는 정당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고, 우익단체와 정치인들이 한국에 대한 혐오와 반감의 목소리를 계속 키워가면 일본국민 상당수에게 우익정신이 스며드는 것을 우리는 우려해야한다.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일본의 우익의 입맛에 맞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으로 역수출되고 있다하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우익화와 군국주의•제국주의화가 본격화되는데 이는 곧 조선의 불행이었고, 약 35년의 식민지 지배의 부작용은 당시는 물론이고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치를 왜곡시키고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첫째는 저자가 이홍구•이영채였기 때문인데, 이들은 진보적인 입장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들로 나의 정치적인 입장과 역사관이 같기에 그렇다. 둘째는 일본우익의 뿌리와 그들의 멘탈리티를 알고 싶었기 때문인데, 이들의 정신세계를 알아야 대책이나 길이 보일 것 같았다.
나는 늘 논리와 합리성, 양심을 추구하고 그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지만 우리의 삶과 현실은 감정과 이익이 앞서는 것을 볼 때 좌절하고 실망하기도 하는데, 일본 우익의 역사를 보면서도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보며 든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은 요지경이다”이다. 일본 우익세력들의 정신세계를 단순화시키면 “우리는 미국보다는 못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제일 잘났고, 우리는 그래야만 해”라는 감정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우익 특히 아베정권은 미국에 만큼은 지나치게 격식과 예의를 찾는 것 같다. 마치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것 처럼. 그들이 혹시, 다른 인접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을 자기들이 혼줄 내준 경험이 있고, 미국은 우리를 항복시켰으니 아시아 국가들은 무시해도 되고 우리를 굴복시킨 미국에게는 깍듯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자세가 “사무라이 정신”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의 사회주의 세력, 진보세력들도 한 때 많은 변혁운동을 주도했지만 큰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만했고, 그세력이 지금은 미약해졌다. 심지어 그나마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인 민주당마저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 몰락해서 그 반작용으로 집권한 자민당 정권은 극우의 길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일본의 현재 정권과 우익의 세력만을 보면 희망이 없어보이고, 암울하지만 일본에는 평화주의자들, 양심세력이 남아 있다. 양기호 교수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우울한 가슴에 한줄의 희망을 던져준다.
“일본사회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평화를 추구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것도 두 차례나 겪었지요. 잔인한 살상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자민당이 몇 차례나 헌법을 개정하려다 실패한 것은 그만큰 일본 사회가 평화를 중시한다는 증거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화세력 마저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의식이 희박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매우 실망스럽다. 일본의 평화주의는 단순히 “일국 평화주의”일 뿐이라는 평가는 대단히 가슴 아픈일이다.
일본우익의 발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운동권 세력은 많은 좌절을 겪었고 쪼글아든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한일 시민 사회의 연대를 주문한다. 현재 일본 시민 사회는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용, 조선인 전범, 조선인 피폭자 2세 등 다양한 문제를 감당하고 있고, 우리 나라의 지난 촛불혁명에 감명받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일본의 정치가 극우의 일로로 치닫고 있지만 한일 시민연대는 서로의 장점을 포섭하고 에너지를 나누면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사회의 양심세력에게서 희망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우리 나라 시인 윤동주의 시와 그의 삶을 동경하고 기리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본인도 아닌, 한국 시인의 감수성과 올곧은 삶, 억울한 죽음을 아파하고 추모하는 그들이 있는 한 일본에게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 저자도 이러한 건강하고 양심적인 시민단체와 우리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단체는 자료가 풍부한데 나이 많은 사람이 많다고 하니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또하나 새로 알게 된 것은 재일 조선인들의 역사다.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가 그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었던 것이다. 가난과 차별이 재일 조선인들의 역사 속에 같이 녹아있었다. 내가 조선말, 식민지 시대, 6.25 시대에 태어나지않았고, 재일 조선인의 신분이 아닌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내 나라의 역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일본의 역사와 사회를 배우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처할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저자들의 생각을 따라가보니 우리는 일본을 철전지원수로 대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어물쩡 과거를 묻고 넘어갈 상대도 아니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는 우호를 다지면서 같이 가야할 정치•경제적 동반자여야 하고, 정서적으로는 피해자로서 진지한 사과를 받아야 할 관계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65년 한일협약,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등)와 복잡한 정치 현안으로 한일관계는 급기야 경제보복까지 이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이 일본에 들어서서 화해하고, 한일의 양심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것이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한일의 양심세력이 연대해서 일본의 시민에게도 실상을 알리고, 일본정부에도 압박을 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듯 하다. 외교에서는 일본 못지 않게 발빠르게 움직이고 로비도해야 할 것이다. 씁쓸하지만 외교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본 현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갈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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