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는 소설가이지만 난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고, 아예 관심도 없다. 그가 쓴 책을 처음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수필이다. 그가 TV프로에 나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난 TV도 거의 안본다. 대충 그를 TV에서 채널을 돌리다 봤을 땐 호감이 가지 않아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 가니 TV에서 채널을 넘기며 지켜보았던 사람이 “여행”에 대해서 책을 썼단다. “이 책을 쓰는데 내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몇페이지의 글을 읽었는데 재미있었다. 중국에 갔다가 추방된 내용이었다. 얼른 주문했다.
그가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과 여행에 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여행의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내가 그의 책을 사보게 된 이유는 출판사의 카피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행을 선망하면서도 경제적, 시간적, 육체적 한계로 실행을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의 책으로나마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는 군인인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 곳에 오래살지 못하고 이사를 자주했다. 대부분의 군인 가족이 그렇겠지만 김영하도 이사 횟수가 상상초월이다.
그러나 잦은 이사로 인해 정착하지 못해서 있었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그는 여행에 관한 책이나 소설이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다.
그는 여행을 자주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부임지에 따라 옮겨다녔고 성인이 되어서는 혼자 외국 여행을 많이 다녔다. 거주 형태로도 미국, 서울서 살았고,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또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한다.
이 글을 읽다보면 나처럼 한지역의 공동체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좀 색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어 준다. 삶에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정상이거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거처가 없어 방황해야 할 상황이거나 자주 옮겨다니며 살아야하는 경우의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현재 다니는 여행과 옮겨다니는 삶은 상황에 의한 불가피성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작가라는 삶이 특정한 곳에 정주해야만 하는 삶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삶은 참 매력적이다. 내 안에는 편안하게 정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나는 책이 있고 도서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딜가도 두렵지않다. 단, 한국 내에서 말이다. 외국은 두렵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자주 도서관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책이 많은 도서관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김영하가 다른 여행자들과 다른 점은 확실하게 돌아올 수 있는 거처가 없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점인것 같다. 한번은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내놓은 집이 예상보다 일찍 팔려 거주할 집이 없었단다. 그래서 부부가 아예 여행을 했단다. 부산에 거주하게 된 것도 미국에서 돌아올 때 서울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에 부산에 거처를 마련했단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당황하고 걱정했을 일을 그는 별 고민없이 한 것 같다. 삶이 여행이라는 정의를 심리적으로 내리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같다.
소설은 일상의 삶을 제거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일상이 제거된채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큰 줄기의 스토리와 다 연관이 되어있다. 하지만 삶의 일상은 대단히 복잡하고 연관성도 없는게 대부분이다. 여행도 일상이 제거되기는 마찬가지다. 일상이 제거되고 내가 계획자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김영하는 삶에서 일상을 제거하고 싶을 때 여행을 한단다.
나도 이번 휴가 때 해외는 못가지만 배낭을 메고 국내라도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편하게 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온 몸으로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그 지역에서 밥먹고 자야겠다. 김영하처럼 해외로 못다니는 것이 좀 초라해보이긴 하지만 김훈처럼 자전거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김영하같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두려움없이 여행자처럼 사는 삶도 하나의 방법이고 때론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향에는 일가친척이 있고 친구가 있고 환대해줄 지인들이 있다는 것도 나쁠거야 없지만 그게 없다고 슬픈일도 아니다. 난 원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김영하는 나보다 10배는 더 그런 삶에 고수다.
김영하의 글빨이 참 좋다. 그에게 관심이 1도 없었지만 이정도의 글빨이면 소설도 재밌을 것 같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203p)
소설은 재미있는 일들을 집어넣은 게 아니라 무의미한 사건들을 배제하면서 쓰인다(2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