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 시대에 문화는 우리를 매일 빈번한 두려움에 노출시킨다. 정보의 흐름에 뒤쳐질까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성실하게 리모콘 버튼을 누르는 순간, TV 광고 멘트로부터 두려움은 시작된다. " 세상 만여가지 질병을 보장한다"는 보험광고가 "빨리 전화하세요"라며 재촉하고, 한 채널 걸러 등장하는 tv 홈쇼핑은 "매진임박" 이라는 자막을 연신 내보내며 위협한다. 이쯤되면 정말 내가 세상 만여가지 질병중 하나에 걸리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들고, 빨리 주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 사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게 될 때도 있다. 일상적으로 이렇게 소비에서마저도 경쟁에 노출되다 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늘 경쟁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여 있었다.
지난해 1년 정도의 수험생활을 거쳐 뉴스에 보도되기까지 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직장에 입사했다. 취업 재수생, 삼수생 시절을 견뎌내야 제 밥그릇이라도 챙길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힘들게 입사하고 나니, 다음은 승진이 문제였다. 휴일에도 무엇인가를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결혼과 임신을 하게됐고 나로서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책 인생수업을 만났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의 인터뷰, ,그 속에서 배우는 삶의 진리. 어지보면 아이러니해 보이는 이 책이, 그동안의 급박했던 삶에 긴 호흡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지나온 삶은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 시기에 이 책을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몇년 전 '느리게 살기'라는 코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느림"이라는 제목을 단 책들은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았다. 당시에는 나도 부지런히 베스트셀러 목록들을 좇았지만,. 결국은 내 삶에 있어 느리게 산다는 것은, 한 때의 취미생활로 끝나버렸던 기억이 난다. 매일 잠을 더 줄이지 못한 것이, 미래를 위해 좀 더 가치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것이 항상 불만인 삶이 지속되었다.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일상적인 모든 일들이 성과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버려야 할 것 보다는 가져야 할 것이 머릿속을 가득채우는 삶이었다.
이 책의 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데이비드 캐슬러는, 때로는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는 삶, 우리가 성취한 일들을 나열하는 것보다는 순수한 기쁨만을 위해 어떤 일을 하기를 권고한다. 또한 작가는 불륜이나 약물 중독 충동적인 쇼핑, 식탐등이 나타나는 원인들도 바쁘게 살아야 하는 억압심리에서 찾고 있다. 일에 있어서의 성취를 최우선으로 하는 삶은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견해가 책의 전반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절반쯤의 동의만을 보내고 싶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봐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성공스토리와 적당히 즐겨야 한다는 사람들의 여유만만 스토리가 서로 엎치락 뒤치락 순위싸움을 하고 있으니 영원한 딜레마인 듯 하다. 이 책은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거나 혹은 그래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사람들이 손에 쥔 것을 잠시 내려놓고 긴장감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상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자극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소 감상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줄 듯하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 중 '로니카예'의 경우, 암을 이겨내고 새 삶을 되찾은 후에야 비로소, 오후내내 아무일도 하지 않고 베토벤의 음악만을 듣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 건설 노동자 '잭슨'과 배우자인 '앤'의 경우,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서 부부간의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렇게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행복이 가능한 이유를, 사람들은 모두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만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은 잘 모릅니다." 라고 말한다.
작가가 글의 서두에서 내세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그것은 자기 자신이 갖추고 있는 조건과는 별개로, 행복을 현재의 마음 상태에서 찾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나오는 것이 아닌 그날 그날 자신의 의지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은 취직했다는 데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게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행복은 부모가 부자가 되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있다는 존재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놓여진 상태에 대한 만족감으로부터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뚜렷한 교훈이다.
날마다 일상적인 모든 것에 시달린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천국에 이르는 삶에 관한 진리를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손에 잡은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삶 그 자체의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