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르한 파묵이었던 거 같은데) 기자가 자신의 책을 간단하게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이렇게 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는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꽤나 자주 사용하고 있고 그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학습당하고 있다. 좋은 의미로 모두에게 뛰어놀 공간을 제공하고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예전처럼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완벽한 모델 위에서 우리는 개인의 특별함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스토리를 강요하며 그 압박에 못 이겨 SNS에 뭔가라도 올릴 것을 찾고 다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무상 노동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저작권이라는 작은 법망이 어느 특정 인지도를 넘어선 사람에게 금액 지불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보호도 개인에 대한 보호도 모두 개인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판만 깔고 돈을 걷어 가겠다는 것이 대부분 플랫폼의 스텐스다. 그럼에도 시대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따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이렇게 플랫폼 위에 글을 쓰고 있으니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제공해 주는 쉬운 정보에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 콘텐츠는 점점 더 쉬워지고 더 자극적이게 된다. 모든 콘텐츠 소비자는 그런 형식에 익숙해지고 중독된다. 긴 글을 쓰지 못하고 읽을 수도 없다. 그만큼 깊은 생각을 하기 싫어지게 된다. 세 줄 요약을 당연시하는 오늘날의 콘텐츠 소비문화는 이를 반증한다.
문학은 독자를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괴롭히기도 해야 한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독자에게 반문하고 해석을 종용하기도 해야 한다. 독자의 생각의 틀을 건드리고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 일련의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되려 자기 개발서처럼 답을 정해 주는 쪽이 훨씬 잘 팔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플랫폼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콘텐츠화하기를 원한다. 그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 역시 공감이라고 포장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된다. 어떤 이론도 어떤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이야기하는 감정에 대한 호소만이 남을 뿐이다.
쾌락만이 남은 사회. 어쩌면 그것이 지성이 사라지는 사회가 아닐까. 일련의 사실을 들여다보고 판단하지 않고 자신에게 이어진 감정에 충성하는 정치, 문학 그리고 팬덤. 더 나아가 개인사까지. 이제는 불편해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회를 '감정화된 사회'라고 표현한 저자는 더 이상 논쟁은 없고 비난만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듯했다.
AI보다 더 빠르게 획일화되고 있는 인간에게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을 지킬 수 있을까? 묘사가 사라지고 은유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문학, 쾌락을 중시하고 쉬운 스토리 전개만이 선호되는 문학이 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 시대와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창의성 마저 AI에게 넘겨줘 버릴 상황이라면 문학의 소멸도 어쩌면 수순일지 모르겠다.
비평을 불편해하는 세상에서 비평은 더없이 소중하다. '사유의 힘'은 지금의 시대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어 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