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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님의 서재
  •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 17,550원 (10%970)
  • 2017-02-13
  • : 1,055
나는 책 읽기를 방해하는 강박관념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그중 제일 안 좋은 생각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관심도 없는 과학, 철학, 정치사회 분야들 책을 억지로 읽으려 했고, 도서관에 가면 분야별로 책을 빌렸다. 그러다보니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대여기간은 2주밖에 안되는데 세네권을 빌려오니 다 읽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책을 펴면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다 읽어야 하고, 책은 의자에 앉아서 바른 자세로 정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말만 읽다가 덮은 책들이 수십 권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책은 매일 같은 시간을 정해서 읽어야 한다든지, 책을 읽고 나서는 꼭 기록을 해 두어야 한다든지 하는 환상들이 있다. 결국 나에게 책읽기는 ‘의무‘였다.

의무로 하는 책읽기는 재미가 없고 금방 지친다.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더 멀리하게 된다.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 책을 안 읽을 핑계를 만들어 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앞으로 1년 동안은 책 내용이나 분야에 얽매이지 말고 ‘읽고 싶은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도서관에 가서 처음으로 뽑아든 책이 이 책이다.

책읽기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독서법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해본 편이라 이런 종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의 부제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우리가 독서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꼭 ‘우리 심심한데 커피나 한잔 하면서 수다떨까요?‘하는 말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사실 단어가 어렵고 오타도 꽤 있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들이 있어서 조금 옮겨본다.

생각은 불꽃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며 완전히 소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유지하려면 한 권 한 권 책을 땔감으로 태워야 한다. -p.52

가능성이지 해답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가능성이야말로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하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다. 가능성이야말로 절망의 반의어다. -p.62

나는 가능하면 독자 자신이 자기의 문화 구조를 지나치게 높은 위치에 두지도 말고 더욱이 야근하듯이 선 같은 삶에 직접 선을 더 이어붙일 것이 아니라 책 읽는 행위가 독자들의 생활 속에 기념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p.178

암기를 포함하여 기억은 감정의 깊이를 필요로 한다. 기억은 대뇌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표현으로서 인간이 흐르는 물처럼 사라져버리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전체의 흐름 속에서 두 손으로 최대한 뭔가를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는 노력이다. -p.220

책 중간에 소개되는 마르케스의 짧은 글 <속독 우승자와 미식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나도 1분에 8000자를 읽는 조지 머치처럼 효율과 방법, 지식 습득에만 신경을 쏟고 정작 책읽는 즐거움, 생각하고 음미하는 중요한 과정은 넘겨 버리고 있지 않았는지.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건 아무 것도 방해가 되지 않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 읽기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라는 칼비노의 현명한 조언에는 마음이 편해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참 바보 같이 책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책을 왜, 어떻게 읽는 건지 잘 몰라서 책 읽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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