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제공리뷰] “나는 그를 안다.” 어떤 의미로 읽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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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하다 엔솔러지 다섯 번째 시리즈 『안다』는 ‘know’가 아니라 ‘hug’의 의미로 쓰인 이야기로 보입니다. 표지 그림 역시 양손으로 무언가를 그러안고 있는 모습이고요. 누군가를 안는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주고 위로하는 행위이기도 하니 저에게 “안다”는 그저 단순한 포옹으로만 읽히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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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에서도 그렇게 느꼈는데요. SF 소설가인 주인공은 청국장을 끓이다가 두부를 사러 나가 사라져 버린 어머니를 추적합니다. 집에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어머니가 즐겨 입는 옷이나 좋아하는 색깔조차 아는 이가 없는데요. 저 역시 아들 셋 맘으로서 이 대목에서 괜히 씁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집에서 나갔다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골목 CCTV에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어머니. 주인공이 다니던 출판사까지 그만두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 이유는 단순히 돌봐야 할 식구가 없기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머니가 사라지기 전날 밤,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못한 죄책감도 작용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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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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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미래의 감옥. 오래도록 충분한 고통을 겪은 자만이 미래로 돌아갈 수 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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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는요? 스물둘입니다. 수감 당시 나이 말고요. 올해가 몇 년이죠? 유형지 연도로 2025년입니다. 그럼 여든······셋이겠네요.”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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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시간은 곧 평생 몰랐던 어머니라는 존재를 비로소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습니다. 남겨진 자들이 두려움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순간, 비로소 실종된 이도 진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요. 앎이 곧 품어 안음으로 치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몰입해서 읽은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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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했던 심윤경 작가의 <가짜 생일 파티>는 무해한 털뭉치들과 삶을 나눈 적이 있다면 깊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우연히 주인공에게 찾아온 고양이가 석 달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는데요. 이 소설은 단순히 반려묘에 대한 상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언니, 직장 동료, 후배와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특히 동생을 몰아세우는 언니나 후배 신정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질 만큼, 인물들의 묘사가 생동감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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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태 작가의 <히치하이킹>은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미스터리한 인물 ‘장’을 따라가는 지영과 승호를 보며 걱정이 되어 내내 조마조마했는데요. 묘하게 찝찝하고 불편한 감정도 듭니다. 영호를 배반했다는 부채감이 독자에게까지 전이되는 불편함은, 작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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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다시 한번>은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조금 짜증이 났던 작품입니다. 너무나 큰 실수들을 연발하며 터트리는 ‘용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미경’도 참 답답했는데요. 사실 저라도 내 친구가 아무리 엄청난 실수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손절하거나 마구 화를 내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실수까지도 기꺼이 포용하고 토닥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짜 우정의 모습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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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의 <그녀들>에는 인상적인 문장이 참 많았습니다. 주인공 영서는 그나마 그럴듯한 대학교 강사 자리마저 잃게 될까 늘 불안해하는 사람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더 세심하게 신경 써주려는 의도로 설문지를 나눠주지만, 학생들은 원치 않는 자기소개서를 쓰게 했다며 영서를 학생 인권위에 신고해 버립니다. 사과를 강요받는 영서의 상황과 그로 인해 얻게 된 공황장애는 현대 사회의 단절된 소통을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윤 선배와 시인 오의 삼각관계보다, ‘자기소개서 작성을 사과하라’는 학생들의 태도가 시사하는 바가 훨씬 크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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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이 때문에 뒷목 잡고 심호흡을 하다가도, 일부러라도 “요놈아~ 말 좀 잘 들어라~” 하며 안아주면 제 분노도, 아이의 속상함도 스르르 녹아내릴 때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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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타인의 진짜 마음과 그 이면의 아픔까지 ‘알아주고’, 기꺼이 품으로 ‘안아주는’ 행위.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두고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연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가만히 안아주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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