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운 만큼, 시린 만큼, 아득해질 만큼, 간절한 만큼, 숨이 차오를 만큼, 삶은 기이하리만큼 아름답다.” <리타의 산책> 중에서 [도서제공리뷰]
이 문장을 보면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수도 있다.
삶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나 될까?
그 몇 %안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며,
이성의 가면을 쓴채 야만을 휘두르는 자들은 늘어나는데?
당신이 불행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까?
#리타의산책 #안리타 작가는 불행을 모르는 삶을 살아와서
“삶이 기이하리만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랬다면 이 책은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리타는 오히려 세상이 휘두르는
야만에 상처받은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묵직한 위로가 된다.
산이, 산을 지나가던 바람이, 산을 내려다보던 달빛이,
가만히 어깨동무하며 친구가 되어준 가문비나무들이,
어린 리타를 살게 했고, 어른이 된 ‘안리타’는
산책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녀(나는 책의 저자를 인칭대명사로 칭하는 걸 좋아함)와
‘밤이(그녀의 강아지)’의 산책을 따라가는 일이 처음에는 조금 버거웠다.
나는 산책을 좋아하지만, 상황과 때에 따라 좋아하는 마음이 변화무쌍하므로.
그래서인지 나는 영 둘이 느끼는 자연에 동화되지 못하고 걱정을 해 댄다.
길이 아닌 곳을 들어서다가 뱀이라도 나오지 않을지 걱정스럽고,
갑자기 만난 비에 홀딱 젖으며 밤이와 뱅글뱅글 돌다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어두운 시간 맨발로 숲에 들어서는 남자를 보고 반가워하는 그녀에게
‘아니, 그 사람이 흑심이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요!’하고 속엣말을 한다.
시력보다 청력에 의존한 밤 산책은 말해 뭐해!!
그러나 오히려 그것들은 그녀가 ‘살아있음을 끊임없는 증명’해주는 존재들이었다.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던 밤의 산, 검게 언 공기 속에서 거칠게 내쉬는 짐승의 하얀 숨소리, 독백처럼 밀려 나가는 입김. 그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_111
그리고 밤에 산책길에서 만난 실루엣이 두렵지 않고 반가운 이유도 알게 된다.
「단순히 산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걸음을 필연처럼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저물어 가는 빛 속에서 같은 숨을 들이쉬며, 말없이도 같은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_115
요즘은 ‘산책’의 효용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 효용을 몸소 경험해 본 사람은 많을 테지.
나도 나름 경험자다. 산책이 주는 새로운 시선, 생각의 전환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쓸 거리가 없을 때도 산책은 좋은 해결책이 되기도 했다.
산책은 복잡한 생각을 비우게 한다.
우리는 비워지면 다시 채우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미 다 비웠기에 더 깊은 곳에서 생각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더 깊은 내 내면을 마주하게 되겠지.
철학적 사고가 이루어질 때 사람의 내면도 성장한다.
산책을 직업처럼 여기는 그녀의 사색을 살짝 엿보면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나를 움직이는 요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어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기원을 가졌는지,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이 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누구인지,
무엇이 이렇게 나를 활성화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내 안에 머무는지.
나는 지금 무엇으로 바라보고, 무엇으로 질문하는지?」 _182
❛단지, 우리 그냥 함께 걷자고, 산책하자고, 말하는 그런 글을 썼다❜는 그녀의 끝인사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제는 산책다운 산책을 할 때면, ‘밤이’와 ‘안리타 작가님’과 함께 걷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수많은 독자가 이렇게 이어져 함께 걷게 될 것 같다고.
#남주서재 (@namjuseojae )서평단으로
#홀로씨의테이블 (@hollossi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