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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sekf56님의 서재
  •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 오라시오 키로가
  • 13,500원 (10%750)
  • 2020-08-20
  • : 1,590
오사리오 키로가/엄지영 옮김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운명은 주사위 놀이와 다르다. 내가 만난 그 사람이 그저 그런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은 단순히 미신에 불과하지 않다. 만남이 충족되려면 다양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고상한 말로 충족이유율, 나의 기질, 관심사, 취향들을 모두 배제하고 내가 그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야만 성립되는 ‘만남’이라는 운명의 조건은 우연적 요소들과 뒤섞여 있을 테지만, 그 이면에는 무수히 많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확률이 만드는 우연을 ‘아름다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사랑-광기-죽음(해설에 따르면 키로가는 이 세 단어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세 단어에 집착하는 내가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라틴아메리카 근대 문학의 선구자 키로가를 만난 것도 그렇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재밌는 것은 키로가의 단편집에 이 단행본의 제목인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라는 단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 단어는 그의 작품 속에 서로 뒤얽혀 혼재해 있는데, 그가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죽음과 사랑과 광기는 서로 구분되지만,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가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은 주제였을 것이다.

죽음(타나토스)과 사랑(리비도)은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듯이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충동이자 욕망이다. -그는 리비도라고 명명되는 성욕에 치우쳐 사랑을 이야기하겠지만- ‘사랑’만큼 살아야겠다는 욕망에 충실한 표현이 없지 않은가. 사랑 없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겠는가. 반면 죽음은 충동이라고 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누구도 우리 내면에는 죽음에 대한 충동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죽음을 다룬 영화나 사건들에 은밀하게 끌리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것을 단순히 죽음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욕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 주는 공포는 언제나 욕망과 뒤섞여 있다. -은밀한 이끌림으로- 여기서 한 번 더 들어가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불사하는 것, 죽음을 통해서 사랑이 증명하려고 했던 문학 작품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누군가는 그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겠지. 광기 말이다. 그런데 그 광기라는 것은 언제나 죽음과 사랑 사이에 은밀하게 자리한다.

광기는 멀리 있지 않다. 불가능한 ‘완전한 사랑’에 대한 반복적인 욕구와 좌절이 죽음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자연을 극복하고자 하는 무모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며, 광기에 사로잡혀 사랑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키로가의 작품에는 유독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주제가 자주 다루어지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극을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간 “이졸데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이네스를 놓친 파니야는 오랜 시간 그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녀를 떠나보낸 주체는 자신이지만, 이내 마음을 돌이킨다. 그러나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이미 늦었다는 말.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를 다시 찾았으나, 대답은 같다. “안 돼요, 안 된다고요... 너무 늦었어요!”(이네스)

그런가 하면 단편 ‘깃텃 베개’에서는 결혼 이후 ‘사랑’에 대한 좌절이 베겟 속 흡혈 벌레라는 환각을 만들어내고, 죽음을 통해서 불가능한 사랑 너머를 욕망하는 ‘알리시아’의 삶이 그려진다. 키로가에게 죽음이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것이 때로 ‘광기’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한, 남미의 척박한 환경, 예를 들면 숲과 밀림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끌림이 공존하는 구조로 표현된다. 자연과 인간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 그것에 좌절하거나, 그것을 극복하면서, 일상적 관념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인지, 유독 그의 단편에는 동물들의 시각이 두드러진다. 동물들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세계를 감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지각 너머를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떠한 상상력도 창조성도 불가능하다. 아직도 당신에게 죽음과 사랑(삶)은 단순히 구분되는 개념인가. 광기는 아주 먼 나라이야기인가. 그렇다면 키로카와 대화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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