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Sorry to disrupt the peace’이라는 뜻은 중의적인 의미를 띈다. 정말로 미안해서 쓰거나 혹은 약 올릴 때, 비아냥댈 때 쓰이거나. 주인공 헬렌 모런은 이 문장이 인간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헬렌의 의도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 보려고, 혹은 자신의 외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를 별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런 그녀가 자살한 남동생의 소식을 듣고 그 전말을 파헤치고자 한다.
미국 밀워키에서 살았던 한국인 입양아 헬렌 모런은 성인이 되고 그곳을 떠나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문제아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상담사로 일하게 되는데, 맡은 일에 열심히 해, ‘믿음직 언니’라는 별명이 있다.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갑작스러운 감사가 진행되려고 할 때, 제프 숙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다. 자신과 같은 한국 출신의 입양아 남동생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헬렌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과 충격을 받고, 이내 오랜 시간 떠나있던 밀워키로 다시 가,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밀워키로 돌아가고 양부모님과 만났으나 그들은 그녀를 환대하기는커녕 당혹스러워하며 껄끄러워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헬렌은 오랜 시간 그녀가 잊고 살았던 과거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헬렌의 입양아 남동생은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가서 남동생이 일기처럼 쓴 기록이 있는데, 거기서도 ‘X, 모런’이라고 언급될 뿐, 책에서는 ‘입양아 남동생’, ‘녀석’ 등으로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익명은 그가 어쩌면 너무 소수여서 혹은 다수를 지칭하는 기호적 의미 보다, ‘내가 될 수도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편이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렸으며 이 폭력은 주먹질보다 이따금 더 폭력적인 ‘상처 나지 않는’ 폭력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풀리지 않는 삶의 허무함에서 자신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내 고민하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에 반해, 헬렌은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을 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결핍’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 그녀 역시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 속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와 애정에 대해 방황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열렬히 쫓아가 보기도 하고, 또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궁극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애정이 이따금 그녀를 파멸로 몰기도 했고 혹은 누군가 그녀를 시기해서 아슬아슬하게 파멸까지 밀어 넣었다. 남동생과 함께 입양아기에 겪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 두 남매에게 짙게 남아있었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밑바탕에 있었으나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둘은 크게 달랐던 것이다.
패티 유미 작가 역시 한국인 입양아고, 동생이 실제로 자살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과 일치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게 정말 옳다. 그녀는 입양아로서 갖는 어떤 차별이나 고난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입양아였기에 그녀가 가졌던 끝없는 결핍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소설로 썼던 것이다. 부수적인 요인이었던 양부모의 폭력이나 가톨릭적 행위는 어쩌면 주인공 남매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요소였을지 모른다.
작품 속 헬렌은 장례식을 포함한 3일 동안 자신의 행보를 독자들에게 기이하게 보여준다. 갑자기 과거로 갔다가 독백을 하고, 때론 현재의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대화 인용구가 없어서 더 헷갈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알쏭달쏭한 플롯이 오히려 헬렌에게 뭐가 채워지지 않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분명 들리는 거리에서 말하고 대답하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거나 혹은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도 제대로 된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녀는 그것을 가족들로부터 경험했고 이후 그 결핍은 ‘내가 믿음직 언니’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동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은 두 남매의 처절한 애정 결핍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그것을 해소했다. 앞으로 헬렌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헬렌과 같은 사람들에게 ‘믿음직 언니’가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발버둥 치는데. 나는 헬렌에 가까운가 그 동생에 가까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