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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미널 조선
  • 박영규
  • 15,120원 (10%840)
  • 2019-12-26
  • : 46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바로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이 문구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이 명대사의 내용을 전제하에 ‘죽음’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인간은 총 2번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물리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이다. 물리적 죽음은 우리가 아는 흔히 자연사, 타살, 자살 등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죽음은 대상이 살아있던 죽어있던 간접적인 살인행위로 그 대상을 죽이는 것이다. 예시로 타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나 악플, 왕따 등이 그렇다. 이 모든 건 물리적으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지만(될 수도 있다), 정신적인 고통이 몇 배가 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대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로도 정신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

다소 긴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했으나 이렇게 죽음을 진지하게 고찰하게 된 이유는 『크리미널 조선』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옛날이라고 해서 더 순진하거나 순수하다는 약간의 편견이 있던 나에게 조선의 살인사건이나 그에 대한 판결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대 보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에는 또 다른 인간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은 사람들의 ‘민낯’을 동반했다. 이러한 민낯은 남녀차별, 계급사회, 학대 등의 물리적인 폭력과 살인이 있었고, 그러한 폭력과 함께 계급과 사회의 권력자들에게는 언제든지 ‘비권력자’에 대한 ‘정신적 살인’을 자행할 ‘권리’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하찮고 익숙해서 제대로 역사에 남겨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잊혔다. 결국, 피해자들의 죽음은 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크리미널 조선』은 다양한 카테고리와 함께 살인사건과 범죄사건이 소개하고 이에 대한 판결과 당대 어떻게 문제에 반응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또한, 서문에서 조선 시대의 수사기관이나 왕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재판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설명되어 있다.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 살인사건, 미제사건, 성범죄 등 분류별로 나뉘어 있고, 그 안에는 각 장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어렵지 않게 소개하고 있기에 충분히 교양 도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가 많고 감정적으로 욱할 수 있으나, 작가 박영규님의 특유의 덤덤한 문체로 차분히(?) 읽을 수 있다.

 

단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진실’은 <1장. 살인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과 <4장. 성범죄 파일>이었다.

 

어느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마을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곤 했다. 고을 수령이 사건 현장에 오기도 전에 이미 마을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다. 문졸들이 들이닥쳐 마을의 노인들을 포승줄로 묶어 죄인 다루듯 닦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온 마을을 벌집 쑤시듯 휩쓸고 다니며 곡식이든 가축이든 옷이든 마구잡이로 노략질을 했기 때문이다. (…) 조선 시대엔 살인사건이 나면 일단 피의자나 피해자의 이웃부터 잡아들였다. (…) 당시엔 이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했다. 간련, 간증, 인보로 지목되면 포승줄에 묶인 채 관아로 끌려가기 십상이었고, 심지어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 이런 상황이고 보니 살인사건이 터지면 마을이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28~29쪽)

 

과연 진실은 참혹하다. 한 마을이 없어질 정도로의 수탈과 약탈. 그러나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은 ‘정의’를 위해서라니. 그 허위성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을 목격하고 경험한 조선의 ‘비권력자’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삶을 지켜냈다.

 

(…) 마을에 살인이 벌어져도 마을 사람들이 쉬쉬하며 은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이 관청에 알리려고 해도 주민들이 압력을 가해서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 피해자 가족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거둬서 피해를 보상해주는 일도 많았다. 피해 보상을 마을에서 해주는 것이 마을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31쪽)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은 살인사건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당대의 사실이자 진실이다. 피해자 유가족들과 그 유가족들의 친인척, 이웃들까지. 모든 것이 비권력자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들은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 살아남으려고 했다.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지면으로 남겨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몇 가지의 사건으로밖에 그들의 모든 참상을 알 수 있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그들의 소리는 ‘찍’하고 내뱉지도 못한 채 역사의 이슬로 마감되었다.

 

두 번째 충격과 공포를 주었던 장은 당연 <4장. 성범죄 파일>이다. 성범죄 파일에는 간음죄로 인한 치정살인, 강간살인, 불륜, 성폭행, 아동 성폭행 등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일부다처제의 시행과 계급사회에서 고위 관리 측이나 남성은 대체로 약한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을 핀 여성이나 강간을 당한 여성 등은 처벌을 받거나 심지어 참형에 처해졌다. 물론 바람을 핀 게 결코 용서될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바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 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을 같이 핀 남성은 약한 처벌을 당하고 여성은 죽는다는 게 분명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신통례는 강간을 저지르고도 교수형은 고사하고 유배형도 면한 셈이다. 그래서 결국 간통죄에 준하는 장형으로 처벌받았다. 그리고 강간당한 고음덕도 장형 90대를 선고받았다. (…) 사실 형조나 세종이나 모두 고음덕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고음덕은 처음엔 분명히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이후에 신통례와 관계를 가졌을까? 이는 그녀의 처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남자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고음덕의 남편이 알게 되면 고음덕은 어떻게 될까? 고음덕은 더이상 남편과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강간을 당한 것이라 해도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고 내쫓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음덕이 스스로 신통례를 찾아와 화간을 벌인 것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동시에 살길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법과들과 세종은 그녀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화간을 했다고 하여 간통죄로 처벌했으니,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56~157쪽)

 

책에서도 명시한 것과 같이 조선 시대에는 남녀차별이 극심했다. 특히 계급으로까지 그게 이어졌으니, 가장 미천하고 도움받지 못한 것은 관비 중에서 여성 관비였다. 이러한 현실에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당하고 살거나, 죽거나, 강간범과 함께 도망치는 것. 이 3가지 밖에 없다. 참으로 참혹한 현실이 아닌가. 권력은 어떤 형태든 폭력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결코, 피해자의 얼굴을 할 수 없다.

 

존장고발금지법이란 한 가정의 구성이 집안의 가장을, 마을 주민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종이 주인을 고발하는 것 또한 금지다. (208쪽)

이렇듯 존장고발금지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사회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알아도 관아에 고발하지 못했고, 종이 주인의 잘못 때문에 피해를 보아도 하소연하지 못했다. 또한 향촌의 일반 백성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 때문에 수령이 아무리 많은 부정을 저질러도 백성이 직접 수령을 고발할 수 없었다. 단 반역이나 모반에 해당하는 사안은 예외로 했다. (…) 조선의 최고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이 이런 악법을 명문화해 시행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종뿐 아니라 중국에서 성군으로 불리는 왕들도 모두 이 법을 시행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왕이라고 해도 결국 왕조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왕에겐 힘없는 백성의 인권보다 국가 체제의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317~319쪽)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지면으로 남은 사건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있는 남성이라는 성별 권력과 고위 관리들의 권위 권력 등이 수많은 비권력자들의 몸과 마음을 짓밟아 버렸다. 더구나 이러한 악법으로 인해 그 권력이 더욱 폭력과 악의 모습을 띠고 말았다. 조선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법과 제도다. 인간의 욕망은 수도 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큰 욕망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으려는 욕망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이름 안에 남성이라는 성별 아래 조선인들의 민낯은 깨끗하다. 이게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기 때문에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중학생 때 읽었던 기사 중 충격적이었던 기사가 있었다. 인도에서 있던 일인데 미성년자가 강간당했으나 그 집안에서 그 강간범과 소녀를 결혼시킨 것이다. 아이가 10살 채 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오늘 다시 이 기사를 찾고자 ‘인도, 강간, 결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바로 최근까지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 굳이 이 예시를 가져온 이유는 ‘아, 인도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1차원적인 생각이나 ‘남자가 무조건 잘못했네.’, ‘여성은 항상 피해자야.’라는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선의 민낯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는 울림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권력과 성별이라는 문제 아래서 수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저 민낯이 나에게 있지 않나? 나는 그들과 조금 다른 환경에 있으면서도 똑같은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아무것도 몰랐어요’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살인을 하면 법인을 잡아내는 것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검거율이 그때 비하면 훨씬 높다. 그러나 정신적인 살인은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농도와 깊이는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깊다고 생각된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익명의 악플, 젠더 갈등, 정치 싸움 등 다양한 문제에서 우리는 육체적 살인이 아닌 정신적 살인으로 이어지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거기에 어쩔 땐 일조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 민낯이 우리에게 진하게 드러난다. 그럴 때 나의 얼굴은 비권력자의 민낯인지, 권력자의 민낯인지 순간적으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조금씩 그 민낯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조금씩 일그러져서 결국 울길. 그래서 피해자의 얼굴을 하길. 그렇게 피해자의 얼굴을 모두가 했을 때, 겨우 조선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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