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포스트는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제가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안부를 전하며>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매우 설레었던 게 기억납니다.
파스텔 보라 바탕 위에 빈센트 반고흐의 '아몬드 나무'라니...
이 어찌 안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ㅈㅅ미수로 인한 상처로 죽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무엇이라도 좋으니 희망적인 것이 있길 바라며,저는 책을 펼쳤습니다.
1. 헤르만 헤세

책은 우선 헤르만 헤세에 대한 얘기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매우 예민한 아이였고,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으나 (제 주관적으론 좋은 부모로 보였습니다),
당시의 학교 교육과 너무너무 안 맞아서 그것이 그에게 크게 상처가 되었고, 그의 예민함이 어떻게 주위에 어린 시절부터나타났는지를 말합니다.

누군 그냥 넘기는 '아이의 예민함' 정도로 넘기는 일화일지 모르나, 그의 서정성과 예술성은 어릴 때부터 엿보였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마음속에서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 마음에 스스로도 제어하고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요.)

그러나 그는 어릴때 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이미 13살에 그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뭐...저렇게 뛰쳐나갈 수 있는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책에서는 헤르만 헤세 본인을 투영한 '라우셔'라는 인물이 나오는 짧은 소설과,

그의 시, 그리고 중간중간 흑백 일러스트가 그의 글을, 그리고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과연 어렸을 때부터 저런 성정을 보일만 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저는 하나 스치듯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그런데 번역은 누가 한거지?' 였습니다.
왜냐하면 꽤 괜찮은 번역이었고, 번역업계에 일하는 지인을 둔 저로서 문학, 그것도 시 번역은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표지에는 옮긴이의 이름이 없으니까요.

사실 표지부터 엮은이의 이름만이 적혀있었기에, 저는 초중반 까지도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뭔가 막연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헤세의 문학과, 중간중간 나오는 빈센트의 그림에 저는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한군데 빵 터진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헤세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그 러시아의 문학의 깊음과
그 광기(?)에 짓눌려 넌더리를 치는 대목입니다. 왜, 세계문학 짤 중에...
1. 미국문학 : 자유를 위해 죽겠다.
2. 영국문학 : 명예를 위해 죽겠다.
3. 프랑스 문학 : 사랑을 위해 죽겠다.
4. 러시아 문학 : ......죽겠다.
...라는 밈이 있거든요.
이게 생각나서 진짜 진짜 한참을 웃었습니다.
헤세가 보기에도 그럴 정도면 러시아 문학 얼마나 대단한가 좋은 의미로(?) 너무 웃겼거든요.
2.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파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남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과 그의 그림들이 나오자, 저는 아주 유심히 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헤세는 본인이 글과 시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기에 진짜 시인이자 작가의 글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빈센트의 편지는 뭔가 달랐습니다.
(본인에게 있어) 평범한 일과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복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느낌에서, 사랑하는
남동생과 여동생에 대한 솔직함 감정과 안부를 전하는 글들이, '예술가의 글이다보니 과연 편지글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다르구나...'였지요.
그가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사촌 및 매춘업을 하는 (딱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했을 때, 주위가 절연을 하지 말고, '왜 자신에게 악이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거냐.'라고 누가 한대 때려줬으면 좋았을지도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ㅜ아마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제가 '기대한 반 고흐를 위한 희망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느낀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주어진 조카, 즉 테오 반 고흐의 장남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 유명하고,
한국에서 우산이나 타 문구상품에 자주 애용되는 '아몬드 나무'를 그렸고,

고급 화랑의 인장이 사라져가는 (위 사진 좌우의 인장이 우측 페이지의 편지지에는 없는) 것을 보고, 늘 자신을 위해 헌신해 줬던 남동생 테오가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아들까지 태어난 상황에서 본인이 짐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ㅈㅅ미수로 이어졌을지도, 라고 엮은이는 추측합니다.
3. AI가 번역과 학습에 이용되었으면 표지에서부터 밝히는 것이 맞다.
이 부분을 적는 것이 씁쓸하지만 적겠습니다.
위에 제가 '이 시는 누가 번역한 거지?'라고 의문이었다고 말했는데,
그 궁금증의 해답이 427페이지에 나옵니다.

엮은이는 이 책을 내기 위해 AI에 헤세와 반 고흐의 글들을 학습시키고, 번역한 다음,
퍼블릭 도메인 공개된 번역과 검토하고, 영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 및 평역했다고 하는데,
본인이 이렇게 (아래) 스스로 언어 능력이 없다고 말하신다면 AI를 한국어 번역 사용하고,
본인이 다듬으신 거겠지요.
즉 이렇게 저렇게 AI의 惡점인, 섞고 섞어서 혼란스럽게 만들어 모르게 한다,를 사용하여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 씁쓸합니다.
여기서 한번 묻고 싶습니다. 헤세와 반 고흐의 저작물을 학습시켰다는 인지는 있으셨는지요?
기업이 학습 아니라고는 말하지만, AI와 대화할 때는 개인정보와 특정 명칭과 사진등을 넣지
말라고 모순을 말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신지요?

개인적으로 어떻게 언어능력이 없는데, 이런 책을 기획하고, 또 본인의 의견을 (책 소개에 애매하게 써 놓긴 했으나 추정하기에) 학술지에 등재할 기획까지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즉 본인이 할 수 없으니 AI를 통해 그 영광을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이 클래식 리스트도 AI가 뽑아준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AI가 일상의 도구처럼 되어가고 있는데, 창작의 도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작권이 침범당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인지하고 있거든요.
본인이 창작자이시니 당연히 인지해야 할 부분이었다 생각합니다.
아주 예전에 불법으로 떠돌던 도서 파일들과 달리, AI학습은 (뭐 기업들은 안 한다고 하는데, 자기들 돈으로 이어지는데 과연 안할까 싶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한 혼합된 괴물입니다.
저는 학습에는 저작권 기한따위 없다고 생각하며, 다른 누군가의 사진 한장도 함부러 넣는 걸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창작자 아니십니까. 이걸 더 인지하셨어야 했습니다.
이어령님의 '인간이 기술을 도구로 쓰는 시대'를 예시로 들면서 AI작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신 것 같은데, 이어령님의 이름도, 그 누구의 이름도 '면죄부'나 '허락부'를 줄 수 없습니다.

6개월 전만해도 AI관련 뉴스에 댓글로 '아, 기술이 오니 대체되는 거 당연한거 아니냐?! ^^ '라는 댓글이 80%였다면,
지금은 이제 사람들이 AI기업이 구름 위에 서서 큰 돈을 벌고, 일반인들이 먹고살 수 있는 생태계를 줄이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댓글이 80%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어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즉 '인간이 기술을 쓰는 것이 아닌, 대체되고 있는 것'을 말이지요.
마치며 :
지금까지 책을 서평할 때는 좋은 점 위주로, 그러나 직접 읽고 느낀 솔직한 점에 맞추어
정말 책이 도움될 것 같다 싶은 부분을 포커싱해서 써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 내용은 몹시 아름답습니다.
그야 당연하죠, 헤세와 고흐인걸요?
그러나 책 뿌리와 구조는 어딘가 기괴~합니다. 뭐라고 할지, 쓰면서도 씁쓸합니다.
누가 준 물을 마셨더니 '훔친 물'이라는 말을 들은 기분에 가깝습니다.
AI활용 부분은 저런 끄트머리가 아닌, 앞표지에 밝히고, 서평단 모집할때도 그 모집하는 분들
및 지원하는 분들에게 미리 말하는 게 예의라고 봅니다.
이상, 서평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