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귀는 개인적으로 낯선 이름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 후기에서 창귀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더 알고 싶어 창귀를 검색하니 놀랍게도 노래 제목도 있다.
창귀의 두 가지 뜻 중에서 작가는 당연히 첫 번째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혼을 의미한다.
이 혼들은 호랑이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는데 이것이 한 가문의 비극과 이어져 있다.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읽다 보니 왜 죽은 이들이 앞잡이로 변한 것인지 잘 몰랐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설정과 서늘한 공포가 어우러져 있는데 상당히 몰입도가 높다.
왜 그렇게 한 집안 사람들에게 집착하는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곡동은 가상의 마을이다.
이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온 선녀란 존재가 있어 큰 위험을 피해왔다.
선녀는 류씨 가문이 비극의 원흉이라고 말한다.
류씨 가문의 장남 류덕현은 많은 선행을 베푸는 인물이다.
그럼 다른 사람일까? 그러다 류덕현의 장남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이가 실종된 사건은 몸통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채 발견된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첫 대목에서 일어나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지만 쉽게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
이때는 1971년이고, 아직 경찰은 필요에 의해 범인을 조작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류덕현의 동생 덕삼네 아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라진 아이는 죽은 사촌 형이 불러서 나갔다고 한다.
죽은 귀신이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창귀란 것을 이때는 몰랐다.
아들의 죽음과 친일했던 아버지의 유산이 형에게 더 갔을 것이란 의심이 자란다.
형님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한 저택에서 머물면서 살게 해주는 돈이 거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환자들이 죽은 아이들을 먹고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흔들린 이성과 탐욕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한다.
이 연속적인 괴이한 살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류덕현은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경찰은 엉뚱한 사람만 범인으로 확정한 채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제 이야기는 90년대로 넘어와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용일은 엄마가 집을 떠나고,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살았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가 엄마의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용일을 끌고 나간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산 속이고,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절벽 끝에 선 아버지를 밀어 죽일까 하는 욕망이 가슴 한 곳에서 피어오른다.
이 살인을 실행하기 전 나타난 스님이 엄마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함께 걸어가는 스님을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볍다.
용일은 힘들게 쫓아가는데 아버지는 용일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엄마를 만나는 것을 방해하려는 듯해 더 열심히 스님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귀들을 만나고, 그들이 바라는 바를 외친다.
청강 류씨 가문 사람 백 명을 먹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들이 마지막 두 명이라고 하는데 무시무시한 일이다.
용일과 아버지는 창귀들과 싸우지만 수많은 창귀를 이길 수는 없다.
이때 복면을 쓴 사람이 나타나 이들을 도와주지만 중과부적이다
용일만 살아 달아나는데 이 인물의 정체가 의외의 인물이다.
그리고 수련과 의심의 연속이 이어지고, 인간의 연약한 마음은 또 문제를 일으킨다.
공포 소설의 공식 속에 인간들의 탐욕과 속성을 집어넣었다.
과거의 악연을 현재와 엮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다.
좀더 분량을 늘이고, 사연을 강화했다면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욕심에 사로잡힌 모습에 집중”했다 부분에서는 고개들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