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강남 좌파라고 한다. 우파가 좌파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데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외국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저자의 전작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읽지 않았다. 그 당시 왠지 모르게 이 단어에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읽었다면 강남 좌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생긴다. 그리고 저자도 말했듯이 얼마 전 ‘조국 사태’에서 강남 좌파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우리가 조국 법무장관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 속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거대한 프레임 중 하나는 1%와 99%의 대결 구도다. 좀 더 나가면 10% 대 90% 정도일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20% 대 80% 사회로 보면서 우리 사회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강남은 아니지만 강북에 집이 있고 연봉도 1억인 지인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보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을 보고 과연 누가 중산층일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아마 고소득 전문직 정도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상위 몇 개 대기업 부장급 정도.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 부동산 정책에 어떤 결정을 할지는 많은 부분 알 수 있다.
저자가 가장 먼저 불평등을 말하면서 1% 대 99% 사회를 내세운 것은 위와 같은 한국인들의 왜곡되고 과장된 기준도 한몫한다. 노동 귀족에 대해 나 자신이 열심히 주변 사람들에게 변호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화되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상위 10%에 포함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는 충분히 10%에 포함된다. 이것을 대물림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는 사실과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부분에서 노동 귀족이란 표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진보가 1% 비판에 집중하면서 노동 내부의 계급화를 놓치고 있는 부분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조국 사태를 단순히 진영 논리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과잉대표돼 있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건들에서, 사법농단에서 우린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거나 자신의 조직에만 충성하는 것을 봤다.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동시에 놓고 본 것은 검찰이 어떻게 조국과 그 집안을 털었는가 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 검찰이 적폐 청산의 칼이 된 것에도 동의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조직 비리에 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봤다. “진영 논리에 열광할망정, 평등엔 무관심하다.”란 지적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보수 언론에서 청와대 고위직들이 강남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공격한 것도 이런 아픈 부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 실세들은 소위 386세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이들을 빼고 운동권을 말하기는 힘들다. “운동권이 거시적으론 권위주의 정권에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미시적으론 권위주의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다.”란 지적은 맞다. 우린 알게 모르게 나이와 직위의 권위를 내세운다. 시대의 효용이 끝났지만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그들이 위에 있을 때 진보는 보수화된다. 진보의 위선을 말할 때 나는 순간 뜨끔했다. 나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위선적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해당되는 것들이 몇 개 보이기 때문이다. 불공정함에 둔감한 것도, 알면서 눈을 깜는 것도 권위주의 사고와 관계있다.
강남 좌파를 존중해야지만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화는 곤란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진보의 우선적인 사명을 불평등 해소와 완화, 정치는 불평등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부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것을 한꺼번에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80% 계층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이 나서야 하지만 현재 정치 구조에서 이것은 쉽지 않다.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검찰총장과 앞으로 생겨야 할 공수처장의 임명을 대통령이 하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동의한다. 로스쿨이 또 다른 권력 세습이나 자기 조직 강화 등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진보 학자의 올바른 지적이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도 진보 진영은 이것을 검토하고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86세대와 그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높은 벽은 이제 점점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내가 놓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