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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님의 서재
  • 아웃 오브 이집트
  • 안드레 애치먼
  • 14,220원 (10%790)
  • 2021-10-18
  • : 221
리뷰를 쓰기 전 먼저 나는 안드레 애치먼의 짱팬임을 밝혀둔다. 특히 그해 여름 손님 (원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을 너무 아껴서 각기 다른 버전으로 세 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TMI: 원작파라 영화보단 책을 좋아하는 편) 그래서 이 회고록을 읽기 전부터 나에겐 어마어마한 기대감과, 이 책은 무조건 좋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의 확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초반 1/5 정도를 너무나도 힘겹게 읽었다. 물론 최근 여러가지 일이 겹쳐 컨디션이 좀 안좋기도 했지만 당시 시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데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머릿속에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 탓이었다(근데 이건 그냥 내가 바보라서 그런걸지도). 초반부를 세,네번 반복해서 읽었다. 읽은 부분을 읽고 또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되고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가 아니었다면 읽기를 포기했을 것 같은데 역으로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였기 때문에 꾸역꾸역 읽다가 속도가 붙기 시작한 이후에는 이 책을 거기서 포기해버렸으면 어쩔뻔 했을 것인가 했다.

내가 콜바넴 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오묘한 분위기와 (그러고 보면 나는 소설을 분위기로 읽는 듯 ㅋㅋ 분위기 중시파) 치밀한 묘사 때문인데 이 책은 회고록임에도 마치 그가 쓴 다른 소설을 읽는 듯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초반부 힘들었던 부분은 제외고요)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한 마디로 '모든 감각을 깨우는 문장들'이라고나 할까. 문장들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너무 많아 몇 개만 골라도 이 정도)
*(...) 무엇보다 그 누구도 감히 산책할 엄두를 내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세계가 치명적으로 변해 버린 듯한 숲 (p.49)
*공책에 머무는 4월의 햇살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법의 주문을 걸어 벽과 책, 책상, 내 손, 베껴 쓴 코란 구절에서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따뜻한 바닷물, 친근한 바닷가 별장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p.323)
*마침 어머니가 발코니 창문을 다 열어 둔 덕에 스무하의 농장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누군가 가져온 재스민이 은밀하고 퀴퀴한 담배 냄새와 합쳐져 거실에 관능적이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p.332)
*나는 수정처럼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숨결이 섞이지 않은 듯한 공기 냄새가 새롭고 신선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기 전의 여름 아침 냄새였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마저도 깨끗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내려 저 앞의 저택들조차 보이지 않는 두 눈을 주변에 가득한 모래 색깔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얼굴만 들면 바다가 있었다. (p.382)

그리고 중간 중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머 공격 혹은 허를 찌르는 대사들.
*"(...) 네가 내 동생이 아니었으면 우리 집이 지금처럼 엉망진창이 되는 일도 없었어." (p.29)
*"기독교인, 유대인, 벨기에인, 이집트인 따위 따지지 마세요. 지금은 20세기 현대라고요." (p.32)
*"공포는 사람을 시인으로 만드는 법이지." (p.222)

물론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다면 지금 내가 읽지 못했던 것들을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므로 더 풍부한 독서가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그저 좋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내겐 생생한 독서였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수로 읽어보시길 권하고(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글이 그의 소설만큼 좋다면 안 읽을 이유가?), 더불어 이 이후의 이야기도 너무나 궁금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라는 문구가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오히려 없어서 어색하고 아쉬움 가득한ㅠ 그리고 책의 만듦새.. 표지, 내지, 구성 등등 이전 작품들 포함 정말 너무 좋다. 너무 예쁘고 소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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