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44쪽까지.
불광출판사판도 좋아보여서 기웃거리다 도서관에서 확인해보니 경문 위주로 구성돼있어 내려놓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티벳, 부탄, 인도, 다즐링 지역을 여행하고 싶다. 다즐링은 차 때문에 언젠가 가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된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도 공부해보고 싶다. 사자의 서를 읽는 동안 같이 읽으면 좋겠지만~ 아마 사자의 서도 겨우 읽을 듯하다. 바가바드 기타는 전에 한번 빌려서 조금 보다가 반납해버렸던 기억. 자세 때문에 멈춰뒀던 명상도 다시 하고 싶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책을 펼치자마자 생에 대한 욕구로 가득하다.
나는 솔직히 이런 치트키는 좀 불법이라고 생각된다.. 뼛속에 새겨진 노력주의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생에서 부단한 수행으로 깨달음을 이루어야지 적당히 살아도 죽음 직후 가이드 목소리를 잘 따라가면 깨달음을 얻어지는 해킹시스템이 있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가이드의 목소리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생시에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니 후뚜루마뚜루 만능규칙은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면 같이 수행하다가 마지막에 죽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다 잘 보내고 혼자 수행으로 깨닫는 길로 가야지뭐..
그리고 요즘 생각의 화두 중 끄트머리 하나를 차지하는 게 악인이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사자에게 즉시 이 사자의 서를 읽어주고 안내를 하면 보통은 해탈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심한 악인은 제외된다. 심한 악인은 사자의 서를 들어도 해탈이 안되고 윤회 시스템으로 간다. 이런 성스러운 정신적인 세계에서도 심한 악인은 따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심한 악인은 왠만해선 손쓸수 없게 정화할 수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손대지 않아도 다 이해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면죄부 보증서를 받은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되면 참 생시의 세계는 점점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 아닌가.. 깨달은 자와 보통의 의식들은 점차 하나씩 해탈로 이 세계를 떠나가고.. 반복해서 남는 것은 구제가 안되는 의식들의 진창이 되면.. 도대체가. 머리가 아파진다.
12p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잘 창조해보자.. 그간의 억지를 쓰고 살아왔던 삶을 털어버리고 주물주물 흐름을 타며. 습습후후 몸에 힘을 빼고.
12p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지대넓얕에서 채사장님이 자꾸 반복해서 말할때 막상 별 생각이 없었는데. 글씨로 읽어보니 듣기좋다~ 아침마다 소리내서 반복해서 말해줘야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귓가에 대고 말해주고 싶다.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13p 먼저 '나'가 죽어야만 한다
요즘 반복되는 꿈의 주제다. 이제 지나온 것, 등돌리고 버리고 온 것에서 벗어나야한다. 이 생각을 하는데 카페 테라스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 생각, 행동을 흘려보내고 바꾸어야될 때라고 한다. 겉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아직 형체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16p 모든 존재가 행복을 발견하기를.
읽는데 눈물이 주르륵. 내 무의식에 뭔가 이런게 있는듯. 아니면 요즘 해결해야 될 문제의 해결 실마리 인듯. 앞으로 이런 기도를 해야겠다. 눈물이 많은데 내가 의식에서 억압했던 것들이 존재감을 외칠때 주로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적어두고 오늘 타로로 확인해보니 내 생각과 비슷하고 약간은 다른 내용이었다. 이 문장이 오래된 나의 감정을 녹여서 '나 또한 행복해져도 되는 존재'라는 위로를 받아 연결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내 무의식에 켜켜이 잠겨있던 어떤 문에 정확한 열쇠가 꽂힌 것도 맞고, 한편으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시도했을때 자애명상에 실패해서 그렇지.
24p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이 질문은 한번 명상과 타로로 생각해보자. 이렇게 메모해두고 아침에 에너지가 가장 좋을때 집중해서 타로를 뽑았다. 나는 내가 누구고 무엇인지 처음에 궁금하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과 행복을 경험하고,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고, 내 운명을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밝게 비추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전체 여정에서 반절 정도를 지난 의식인 것 같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상향을 쫓아 가고 있다. 막막하고 답답함을 지나 내 세계를 세우고 있다. 지난한 과정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천천히 나아가며 배우는 사람이고, 변화하고 있다. 이번 생에서 사람들과 연결됨에서 배우게 된다.
25p 그대여, 진리에 대한 열망과 명상과 실제 수행을 하나로 묶으라. 그리하여 실제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앎을 얻으라. 이 삶과 다음의 삶과 그 둘 사이의 삶을 하나로 여기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하나인 것처럼 그대 자신을 수행하라."
진리에 대한 열망과 명상과 실제 수행을 하나로 묶으라니. 이런 건 듣도 보도 생각도 못해본 것. 너무 멋진 삶이다. 이렇게 살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늘 내 삶이 내 가치관에 세상에 구현된 그 자체이기를 바라고 의도하며 살아왔다.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삶도 내 자신이 오밀조밀 빚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를 생업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34p 고대에는 신비 종교의 입문식에서 반드시 죽음의 의식이 행해지곤 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의 세계를 미리 체험하는 신비 의식이었다.
나도 기존 자아의 죽음 의식을 해볼까? 싶다. 아직 뭘 죽여야할지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사색과 탐구가 더 필요하다.
36p <티벳 사자의 서>가 가르치듯이, 인간은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 마음의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역시 죽음의 방식은 단식 존엄사여야 된다. 엉겁결에 놀라거나 하면서 죽어버리면 말짱 도루묵.
40p "인간은 육신을 버릴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음의 삶을 얻으리라. 그의 생각이 몰두해 있는 그 상태를 그는 얻게 되리라."
죽음의 순간의 마지막 생각이 다음 생 결정한다니. 해탈마저도 수능 시스템이다! 평생 마음을 잘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잘 닦아보아도 죽음 직후 평정심을 잃고 호리호리 엉뚱한 빛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재수 당첨. 생시에 어떻게든 <티벳 사자의 서>에 통달하고 자동반사가 가능해져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