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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건강. 건강 목표는 당연히 이석증 관리로 시작한다. 연 4회 이하로 조절하기. 주2회 근력운동. 10km 연속 달리기. 한 달에 하루 나들이 다녀오기지. 완전한 실패다. 지금에서야 깨닫지만 비중 순서부터 잘못됐다. 나 정도 상황이면 건강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올려야 한다. 


 올해는 드디어 연간 이석증이 온 횟수가 10번을 넘어섰다. 제일 큰 문제는 최근 5년간 이석증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점점 많아질수록 몸이 저항하는 건 사실 당연하다. 하드웨어는 한정돼 있는데 소프트웨어를 자꾸자꾸 욱여넣으려고 도파민 버프써서 밀어붙이니까. 최근에 든 생각인데 이게 카페인이나 도파민이나 생명을 꺼내쓰는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는 그냥 디카페인 커피라도 먹고 싶어서 하는 아무 말. 이석증이 올 때마다 상실의 5단계를 반복한다. 부정하고, 화내고, 타협하고, 우울해하고, 다 포기하고 수용으로 마무리. 수용까지 빨리 밟아야 빨리 상황이 종료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해지는 거랑 능숙해지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직도 늘 상황 시작 타임이면 화가 난다. 갈 길이 구만리인데 또 그런다고?!!!!!!!!!!!!!!!!!!!!!!!!!!!!!!!!! 타자를 치면서도 불길이 치솟는다. 속에서 열불이 나도 부질없다.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하고 2주는 쉬어야 한다. 그러니까 올해는 20주는 송장 상태로 살아야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 그러니까 한 해의 60%만 정상 시간으로 쓸 수 있었다는 얘기고. 그래서 다음해에는 새로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20%는 미리 놀면서 균질하게 가져가보기로. 그리고 휴식기에는 글자도 못 보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다 꼴보기 싫으니까 명상 레벨만 올릴거야.


 사실은 알고 있다. 욕심이 문제야.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이 바라고 조급하게 굴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 게 문제고. 이제 다른 방식에 적응해서 하고 싶은 걸 조금씩 오래오래 계속 하는 작전으로 가야 되는 거고. 용기를 내서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더 멋있는 건지는 알겠는데. 이제 인지는 되는데 아직은 썽이 난다. 나아질 거야. 인지하고 방향성을 입력하면 반복하다보면 출력할 수 있게 될거야. 


 이석증 조절을 못 하면 모든 계획이 다 쓰잘데기없다. 상태가 안좋으면 크런치만 해도 걷기만 해도 부스스 이석이 빠진다. 앉아있거나 서있을 수 있다. 근력이고 달리기고 산책이고 아무것도 못한다. 아까운 근육들이 일년새 다 사라지고 생존근육만 남았을 것.. 


 22년부터 적용해봤던 한달에 하루 나들이 다녀오기는 효과가 좋았는데. 1분기부터 쭉 살인적으로 일이 바쁜 통에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갈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몰아서라도 총 회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걸 더 다 제쳐두고 균질하게 배치하려고 해야 한다. 올해는 총 11번 다녀왔는데 4월 3회. 8월 2회. 10월 1회. 11월 3회. 12월 2회. 정확하게 직장 인력 공백기랑 반비례. 대자연 안에서 휴식하는 게 좋은데. 대도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주로 공연이나 전시에 치중해서 보완할 부분. 공연전시가 8회로 비중이 높았다. 환기가 되고 새로운 영감도 얻고 욕구도 다시 차오르고 좋긴 한데. 이사하기 전에는 어딜가든 초록초록했는데. 왜 대도시 사람들이 자연자연한 데 환장하는지 공감이 간다. 작심하고 비상시 갈 수 있는 자연지역 목록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 필요할 때 찾으면 늦다. 찾아볼 힘이 없다. 


 계획에 없었던 식단 변경도 있었다. 22년 8월 3년 정도 유지했던 키토식을 포기하고 단백질 위주 건강식으로 전환했는데. 연초에 복직하면서 일이 감당이 안 되면서 다시 아침에 방탄호지를 추가했었다. 그래도 터무니없어서 버터량을 점차 50g까지 늘렸는데. 여름에 복합적으로 문제가 터지면서 결국 지방 비율을 확 낮췄다. 지금은 일반적인 한식에 단백질을 좀더 챙겨먹는 정도. 덕분에 식단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 아낄 수 있게 됐다. 일주일에 2번 반찬을 배달받아서 먹고 조리는 월 2~4회 정도만 하는 걸로 바꿨다. 기본적으로 집에서 쓰는 원재료 등급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먹는 비율이 올라가면서 실제 섭취하는 총 원재료 등급은 포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어쨌거나 식단을 바꾸고 몸 상태가 더 안정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듯한 느낌. 전투에서 한번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전쟁이 중요한 거지.


 건강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5점 이상 매길 수 없다.


 드디어 마지막 관계 부분. 목표는 부모님과 연 4회 보는 것. 책모임을 이어가는 것 정도. 끝에서 끝으로 이사를 하면서 스스로 정했던 목표. 처음부터 내가 분기마다 내려가는 게 무리일 것 같아 두번은 부모님이 올라오는 걸로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는 둘다 무리여서 연2회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최소 앞으로 5년 동안 엄마아빠를 보는건 10번 뿐이라고 정했다는 말. 출퇴근 시간에 자주 연락하면 되지. 내가 한번 부모님이 한번. 올해는 2번 만났다.

 

 올해 이어갈 책모임은 궁여 정도였는데 의외로 모임이 4번 있었다. 참석은 2번만 했지만. 작년에 사람들이 먼저 서울까지 놀러왔기 때문에 올해는 내가 연말에 내려가기로 했었는데. 결국 바빠서 못 갔다. 미안해요. 대신 내년에 꼭 가기로. 


 그리고 뜻밖의 행운은 백구독서모임을 하게 된 것. 같은 목적을 가지고 느슨하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스케줄을 진두지휘해주는 나이스 커터가 있어서 순항중이다. 오랫동안 했던 책모임을 마치면서 쏟았던 애정과 시간만큼 힘들었는데. 이렇게 1/n로 적당한 1인분으로 참여하는 책모임도 편안하고 좋다. 대신 틀을 유지해하고 수고해주는 사람에게 늘 고마움을 잘 표현하고, 1인분보다는 약간 더 적극적인 참여자로 모임이 풍성해지도록 최소한의 역할은 해야겠지. 


 이사 2주년을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볼 기회가 좀 있었는데. 충격받은 건 그동안 새 친구를 한 명도 안 사귀었다. 첫 해는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느라 집에 거의 있질 않았고. 둘째 해는 일하느라 진이 빠졌다. 무엇보다 필요를 안 느껴서. 다른 필요를 먼저 채웠다면 남는 시간에 생각해 봤을 법도 하다. 당연히 늘 시간이 부족하니 계획 외에 남는 시간 같은 건 없지. 또 기본적인 관계 욕구는 언니랑 해소가 돼서인듯. 이번에 언니랑 이 문제를 얘기해봤는데. 내년부턴 언니도 더 바빠질 거고. 아무튼 그러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나는 지적인 외로움은 심하게 탄다. 방치하면 또 묵어서 큰 문제가 될거야. 지금은 만나던 사람들과 화상으로 가끔 만나는데. 오프에서도 해소를 해야 돼. 대도시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거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 재밌는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나한테 부족한 걸 갖고 있는 사람. 내가 가진 게 부족한 사람.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 


 관계 부분은 목표치만 생각했을 때 50점은 줄 수 있겠다.


 종합적으로는 일, 투자, 독서, 관심사, 건강, 관계 파트에 연초 기준 가중치를 둬서 40:40:5:5:5:5로 보면 52.5점! 정리해보니 가혹한데. 그래서 이게 바로 선생님들이 말하는 열심히와 잘 이 다른 이유.. 방향을 잡지 않고 중간 점검을 하지 않고 피드백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가니까.. 셋 다 게을리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1년 단위 방향성을 생각하면 반타작인 한 해였지만 충분하게 애쓰고 많이 성장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한 해였다. 길게 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정말정말 잘 해냈다. 언제나 최고지. 내년은 더 신나는 해가 될 거야. 거시사 정리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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