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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ernar5님의 서재
  • 공부의 위로
  • 곽아람
  • 14,400원 (10%800)
  • 2022-03-20
  • : 2,954



세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한 잔의 커피, 아름다운 음악 등등.

그런데 공부의 위로라니 paradox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아귀가 맞지않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드는 것도 같다가 회사생활을 생각하니 그래 공부하던 시절이 스윗했지 라는 생각과 함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 4년동안 들었던 수업에 대한 총평이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저자가 경험한 대학 생활은 진정 무언가를 공부하고 사고의 깊이를 더해갔던 찐 으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경험한 대학 생활은,, (물론 한국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냥 학점을 채우고 학문에 손가락 마디만 살짝 담그려다 나온 것 같아. 아직까지도 스승으로 모시면서 찾아뵙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도 너무 부럽고, 자신에 한계에 부딪히며 사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씨름을 했던 것도 너무 부럽다.

 

#1

역사의 인간과 문학의 인간. 나는 종종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실증의 세계인 역사와 허구의 세계인 문학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재미있는 것은 기질적으로 '역사의 인간'인 사람과 '문학의 인간'인 사람도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문학의 인간'인 나는 종종 '역사의 인간'들과 부딪친다. 나는 그들의 상상력 부족을 답답해하지만, 그들은 아마 나를 허황하다 여길 것이다. P69

 

어릴 때부터 문학 위주의 독서를 한 때문인지 인문학 수업, 특히 문학이나 예술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시인, 소설가, 화가, 학자 등과 영혼의 쌍둥이라도 된 듯 공명할 수 있었다. 그건 이해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느낌의 영역이었고, 본능의 영역에 가까웠다. P200

 

이 부분을 읽으며 MBTI의 F와 S가 생각이 났다.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과 이상향을 추구하는 S적인 사람과 이상향과 이타성을 추구하는 F적인 사람. 나도 F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지만 S성향이 보다 더 우대받는 돈을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S답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후천적으로 기른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무장해제가 되면 내 속의 F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천성이 F인데 주변에 S가 많다보니 외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가끔 있지만 사람은 가변적인 존재이기에 그때 그때 F와 S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저자도 본인이 '역사의 인간'이라고 여겼던 동양사학과 여학생이 따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양미술 작품'에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낸 레포트를 보고 마음의 편협했던 사고가 한 번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하나의 어떠한 잣대만으로는 가려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참 재미있는 것 같다.

 

#2

밤이 싶어 꽃이 잠들어 져버릴까 두려워 촛불 높이 밝혀 붉은 모습 비추네 「소식의 한시_해당」

삶이란 퍽 짧으므로 우리는 촛불을 밝히고 어둠의 시간을 충분히 이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캐힐」 P79

 

그래도 이런 시구, , 짧고 아름답지만 힘을 담고 있는 문장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아버리는 난 파워 F

 

#3

누군가는 '암기'를 '절반의 앎'이라 비웃지만, 그 절반의 앎이 시작되지 않으면 완전한 앎이란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P131

 

정말 너무나도 격하게 공감한다.

암기에 대해 좋다 나쁘다 말이 많다. 아마도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너무나도 시달렸기에 암기라는 말만 들어도 무의식 적으로 고된 학창시절이 떠올라서 반사작용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창의력이 꽃피울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선 충분한 data라는 거름이 내 속에 쌓여야 하는 것 같다. 그 data를 쌓는 가장 효율적이고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암기. 처음 시작은 힘이 들지만 암기위에 암기를 얹다 보면 복리 개념으로 내 data가 뻗어져 나가면서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것 같다고 항상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그런 같은 생각을 이런 멋진 문장으로 표현한 글을 읽으니 내 속이 다 뚫리는 것 같아!

 

#4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배우는 사람은 아무리 설익은 생각이라도 발화할 권리가 있고, 가르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 그에 응답해 준다는 믿음을 그 수업을 통해 갖게 되었다. P179

 

책을 장악한다는 것은 날뛰는 야수의 목덜미를 낚아채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틀어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나를, 책이라는 맹수를 길들일 수 있도록 정교하게 훈련시켰다.P325

 

대체 같은 21세기의 대학을 다녔는데, 왜 내 대학생활과는 사뭇 다른 기분일까?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 발표는 교수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발표였고, 교수님이 딱히 최선을 다해 질문에 답을 해준다는 인상을 받은 수업도 별로 없었다. 대학 교실은 넓었지만 교수님의 강대상을 중심으로 마치 ㄷ자를 그려놓은 듯, 양쪽 벽과 뒷자리에만 학생들은 모여있고 교수님 정면에 아무도 앉지 않았던 그런 풍경이 익숙한데...

이 책을 쭉 읽어 나가면서,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강의실의 모습에서 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건 대학이 달라서일까 과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저자의 특성상 많은 수업에서 그렇게 밀도 높은 사고를 했던 것일까? 여튼 한마디로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인생과 학문의 선배로 그 길을 이끌어 주는 교수님들이 계셨다는 사실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다.

 

#5

단지 공부가 좋아 쓸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 강의를 듣겠다 마음 먹은 학생들....... 그 낡고 허름한 지상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천상의 언어를 뱅고 있었고, 그 언어는 대부분 수상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P306

 

중학교 시절, 다들 졸고 있는 아침 조회시간에 교감 선생님이 읽어주시던 영시에 마음이 울컥하고, 고려 가요 가시리를 읽다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으면서 화자의 마음에 (당시에는 사랑시라고 생각했었다) 공명해 마음이 아렸던 사람인데 고등학교 시절 세상을 현실적으로 살아가려고 보니 문학을 전공해서는 밥벌이를 할 수 없겠더라. 그래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는 정치외교 학과를 갔고 돌고 돌아 지금은 금융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 성향과 내 전공과 내 직업은 '쓸모'라는 키워드를 두고 움직여 온 것 같다 ㅎㅎ 나름 쓸모, 재능, 재미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나름 무던히도 애썼다고 작게 변명을 해보지만.

실은 나도 라틴어를 독학해보고자 휠록 라틴어 문법책을 샀더랬다. 한 7년전에 산 것 같은데 아직 표지도 펼쳐보지 못했다. '쓸모'의 부름에 충실하느라... 그래도 그 책이 내 책장에 무게감있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잉여의 기분이 조금은 마음에 스미는 것 같아. 언젠가는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며 탐험할 미지의 세계가 내 책장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걸로 지금은 충분하다!

 

참, 특이한 책이었다.

대학시절의 수업을 회상하고 책으로 만들었고, 전공이 고고미술사학이어서 그런 것인지

문장 하나하나 내공이 느껴지는데 거기에 그림해설까지.

심지어 그림의 영역이 서양화뿐 아니라 동양화 조각상 건축물...

'동서고금'막론하고 넘나든다.

가볍게 읽힐 것 같은데 작가의 성장통도 곳곳에 녹아 들어가 있어서 생각만큼 가벼운 책은 아니었다.

삶의 추가 필요하고 무게가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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