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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 허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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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26-04-27
: 1,540
"은미(隱微)하다는 것은 소란한 울음 뒤로 숨어든 고요의 뼈대를 읽어내는 일이며, 무너진 마음의 폐허 아래서 여전히 박동하고 있는 생의 실금을 찾아내는 일이다." (산문, 〈은미하다〉)
허향숙의 문장은 캄캄하고 둔탁한 상실의 현장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예리하고 투명한 감각의 고고학을 수행한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부재를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바꾸어 놓는 탁월한 비장미를 지녔다. 그에게 기억은 관념이 아니라 "네가 떠난 날 이후 세상은 온통 밑줄 천지"(〈득수〉)라는 고백처럼 지상에 선명하게 그어진 선이며, 냉동실 어둠 속에 십오 년간 저장된 "아프기 직전 구워 준 파이"(〈냉동 파이〉)의 감촉이다.
시인은 소리가 부재하는 상태인 ‘실어(失語)’와 ‘고요’를 단순한 공백으로 두지 않는다. 그에게 고요는 "폭발 후의 하얀 찰나"(〈고요에 대하여 5〉)이자 모든 빛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가장 치열한 백색광이다. "뱀 우는 소리"라는 불가능한 소리를 찾아 나선 [시인의 말]에서부터 알 수 있듯, 시인은 예정되어 있으나 울리지 못한 "텅 빈 마디와 마디가 서로 부벼 우는 낮은 무음"에 귀를 기울인다.
제2부 〈꽃의 문법〉에서 드러나듯 시인에게 꽃은 식물의 성기이자 발기된 언어이며, 동시에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 그 자체다. "장미의 그늘로, 양귀비의 여백으로" 평생 배경색으로만 살다 마침내 이생의 유일한 주어가 된 〈안개꽃〉의 서사는, 자식을 잃고 평생 가시풀을 씹는 낙타처럼 울었던 어머니(〈가시성〉)의 거친 손가락과 겹쳐지며 시각적 가시성을 획득한다.
에필로그에서 묘사되는 얼굴이 지워진 존재는,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대리하여 앓아눕는 파랑새의 날갯짓을 통해 비로소 눈, 코, 입이 꽃잎처럼 돋아난다. 대못을 빼물고 날아간 파랑새로 인해 "아프다는 말이 자라 그를 삼켰다"는 에필로그의 서사는 잔인하도록 아름답다.
허향숙은 상실을 무(無)로 돌리지 않고, 지 지상의 모든 아픈 것들의 품으로 삼는다. 그의 시집은 부재를 앓는 모든 이들의 창가에 비치는 창백하고도 따스한 윤슬이자,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할 거룩하고 서정적인 형벌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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