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불러줘, 빗자루
김두를빛 글, 송효정 그림
노란상상출판사
성인이 된 후 그림책을 좋아하고 스스로 찾아서 많이 접하게 되면서 문해력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그림책 자격증 과정을 함께 이수한 분들과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같이 서평쓰기도 해 보며 점점 글쓰기에 대한 막막함도 조금은 해소된 듯 하다.
에세이 쓰기반도 도전해 보고 ,그림책 만들기 반도 도전해 보고나니, 소설책도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술술 읽히는 책들을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고 ,속도가 붙으면서 흥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평단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서평단에 도전해 한 출판사에 서포터즈로 활동을 하게 된 첫 해이다보니 사실 어려웠다.
너무 걱정없이 뛰어들어서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 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들이 속속들이 도착해 나가면서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접한 이 책이 내 생애 첫 동화책이라고 해야할까?
그림이 없으면 읽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읽는 속도가 더디다 보니 읽은 곳을 표시 해 둔 후 다음번에 읽으려면
그 전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앞을 끄적이다가 포기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림이 펼쳐지게 글을 써 내려가서 읽기가 수월했다.
흔히 "마녀" 라고 하면 마법을 부리고 나쁜짓만 골라하고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가 일쑤인 존재인데
이 책은 참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마녀의 마법빗자루가 집을 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녀는 잠만자고 귀찮아 병에 걸리고 시들시들병에 걸렸다고 표현한 점도 귀가 솔깃해지는 문구였다.
나도 모르게 그 표현을 읽고 또 읽고 흥얼거렸다. 그러고 마녀가 변신한 생물역시 깃털이 숭숭 빠진 독수리라니...
이 역시 머릿속에 훤히 그려져서 읽는데 더 신이났던 대목이다.
중간에 "화통을 삶아먹으셨나"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내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화통"을 찾아보니 화구나 굴뚝이라고 나와있었다.
거기까지는 예측 가능한 뜻이었으나
관용구로 "화통을 삶아먹다"는 목소리가 아주 크다 는 뜻이 있다는데 내게는 생소했다.
어린이 동화에서는 좀 어려운 표현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살짝 스쳤다.
슬비라는 주인공이 마법빗자루를 만난 후, 슬비의 일상이 그려지는 내용의 동화이다.
슬비는 엄마와 단 둘이 사는데. 가끔 엄마의 남자친구가 놀러온다. 그런 날이면 슬비에게는 불편하고 싫었으리라.
역시나 아저씨는 슬비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게다가 외상으로 가져오라까지 시켰다.
익숙한 슈퍼였지만 주인 할아버지 대신 알바생언니가 있어서 외상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아저씨가 말한 것들을 품에 안고 쭈뼛거렸다는 표현이
옆에 있었다면, 마음을 뚫어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대신 안아주고 싶었다. 그 긴장감, 하기 싫은데 해야하는 강압적인 일들,
나름 머리를 써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했을 용기 등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상황이였겠지만, 과연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일까? 어른이 되지 못한 아저씨일까? 너무 어른이려고 한 슬비일까?
책이 챕터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쭈그렁 마녀가 쌀쌀맞게 퉁을 놓다는 표현도 좀 생소했다. 퉁: 퉁명스러운 핀잔, 핀잔을 주었다 정도로 써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기록해 둔다.
마지막 즈음에 명대사가 나온다.
<눈물은 쏟아야 맛이지. >
<세상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때론 너 자신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걸 명심해라. >
<살아가는 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 말이야. 그러다 보면 네 안에 엄청난 힘이 자라고 있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올 거다.>
이런 마녀가 옆에 놀러와 준다면, 이런 빗자루가 내게 찾아와 날 위해 노래해 준다면 힘이 나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빗자루가 노래해주는 부분이 멜로디로 만들어줬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내가 읽을 때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데 리듬감이 살지 않아 아쉬웠다.
아이들이 읽을 때 한번 작곡해 보세요 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