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마음을 녹일 것처럼’.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좋아해서 찾아 읽는 편인데, 워낙 다작 작가라서 뒤져보면 또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이 있어서 찾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분은 진짜. 사람이 아니거나 히가시노 게이고 팀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든다.
미미여사의 소설은 언제나 날카롭게 시대를 관찰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다. 대표적이었던 것이 화차, 신용불량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서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와, 그렇게 빠져버린 사람의 심리,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서술해나간 점이 무척 좋았다. 그 외 다른 작품들도 작품이 쓰여진 일본사회의 부분들을 잘 반영하고 담아나가고 있어서 좋다.
특히 여러 작품들을 보면 소년범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느껴지는 편. 이런 범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사회와 소년범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찰과 고뇌가 느껴져서 좋다. 청소년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따뜻하다. 그게 제일 잘 도드라지는 것은 역시 에도 시리즈물.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은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어서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현대물에서도 그런 경향이 많이 보이는데, 탐정견 마사의 시선으로 그리는 이 소설도 역시 어딘가 온기가 돈다. 마사가 살고 있는 탐정 사무소의 사람들이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범죄와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 다감함이 사건을 불러일으키기도, 피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따뜻함이 늘 보답받는 건 아니란 점이 안타깝고 씁쓸했다.
주인공이자 이 글의 화자인 마사는 하스미 탐정 사무소에서 오래 기른 개이다. 군견으로 일하다가 하스미 탐정 사무소로 오게 되었고 가요코와 파트너로 일한다. 개-견족으로서는 충분한 나이를 살아서 자못 세상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고 침착하게 서술해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역시 인간 아닌 종족의 시점이 주는 즐거움과 귀여움이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어
“백과사전적인 분류에 의하면 나를 가리켜 ‘저먼 셰퍼드’라고 하는데,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맹견으로 알려져 있다. ‘저먼’은 독일을 뜻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곳에 가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갈 것 같지않아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토코가 단골로 다니는 상점가의 빵집 중에 ‘저먼 베이커리’라는 가게가 있고 거기서 만드는 빵은 그녀의 말에 의하면 ‘무지막지하게 맛있고 싸다’고 하니까 ‘저먼’이라는 곳은 맛있는 빵을 구워내고 용맹하고 충성심 넘치는 개들이 사는 곳일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 8page
이런 어쩐지 천진한 서술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다보니 다른 등장인물과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 자신의 감각으로 느낀 것들, 알게 된 것들을 전달할 수 없는데 그래서 더 즐겁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재밌었다.
제 1장 마음을 녹일 것처럼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문장.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장이 쓰여서 조금 당황했다. 문장 자체는 애잔하고 따듯한데, 글 속에서 이 문장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떠올려보면 어쩐지 블랙조크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마음을 녹일 것 같은’ 미소에 홀려서 속아 넘어간 사람들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안타깝다.
마지막 마사의 내적 서술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마사의 상상이 제발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2장 손바닥숲 아래에서
마사와 가요코가 산책 중에 발견한 시체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 화자의 서술과 실제 사건 진행의 갭이 재미있었다. 손바닥숲이라는 소재가 알뜰하게 쓰인 것도 좋았고. 어떤 범죄는 자신의 욕심과, 혈육에 대한 걱정, 사랑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난다. 그래서 이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제 3장 백기사는 노래한다
결말이 너무 안타까웠던 챕터. 선의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안타깝다. 그 안타까움이 작품의 완결성과 작품성을 높여주는 요소기도 하지만 역시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제 4장 마사, 빈집을 지키다
짧은 단편인데도 이야기가 다소 복잡하고 반전이 있는 편. 메인 스토리도 메인 스토리지만 서브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에 더 눈길이 갔다. 하라쇼의 이야기가 특히.
철공소 아저씨 같은 인간은 앞으로도 자꾸 늘어갈것이다. 그런 인간은 어른 중에도 있고 아이 중에도 있다. 학교의 토끼를 죽이고 재미있어 하는 녀석도 있지만 반려동물을 기분 풀이 대상으로 삼는 녀석도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군림하는 건 누구라도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학대하다 죽어버리면 돈을 주고 다시 사면 된다. 생명이라는 것도 돈으로 쉽게 살 수 있으므로.
동물과 더 많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면서 동물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무관심, 적극적인 학대 속에 괴로워하는 동물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괴롭고 안타깝다. 동물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할 수 없다. 삶 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그들의 삶을 결정해. 이 챕터에서는 동물을 자신의 욕구대로 함부로 다루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괴로웠고 그들이 제대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5장 마사의 변명
4편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한 편 더 나와서 놀랐다. 당연히 에필로그나 작가의 말, 번역가의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의 미야베 미유키 본인 등장 ㅋㅋ 오노 후유미의 잔예나, 작가 자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있는 미쓰다 신조 소설들은 읽어본 적 있는데 미미여사가 자신의 작품에 직접 등장한 걸 본 건 처음이다. 어쩐지 오싹한 결말까지. 작가들은 왜 자기 자신을 작품에 넣으면 되게 초라한 사람처럼 묘사할까? 좀 부끄러워서 그런걸까? 근데 나라도 그럴 것 같다 ㅋㅋ
마사가 귀엽고, 따듯하면서 어쩐지 안쓰럽고 쓸쓸해서 읽으면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