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이수진님의 서재
  • 클레오파트라의 꿈
  • 온다 리쿠
  • 11,700원 (10%650)
  • 2017-12-20
  • : 72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은 것은 오랜만이다. 고등학교 땐 무척이나 좋아했고, 작품들을 여러 번 곱씹어 읽으며 공감했는데 나이가 드니 확실히 그 때 감성으로 읽히진 않는다. 읽어야 할 때가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온다 리쿠 작품들이 그런 종류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엔  집에 이 분 작품이 거의 다 있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가기도 하고, 그 시절이 추억이 떠올라 종종 읽게 된다.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작품은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 2권이 정발됐는데 메이즈란 작품이 첫 번째고 클레오파트라의 꿈이 두 번째다. 여자 많은 집의 막내로 자라 외모나 생김새는 매력적인 남성이지만 사용하는 언어나 몸짓은 여성적인 간바라 메구미가 주인공. 일본어는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단어나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가 두드러지게 달라서 원어로 봤으면 메구미가 사용하는 말의 위화감이 더 두드러졌을 것 같다. 한국어 번역으로도 수다스러운 아주머니같이 말하는 어조를 잘 살렸다. 묘사나 부연하는 말 없이 대사만 보면 말 많고 오지랖넓은 아주머니의 대사 같다. 

 인상적인 부분은 메구미가 청소년 시절, 가족들에게는 여성적인 어조로 말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남성적인 어조로 말한 것을 ‘바이링귀얼’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일본은 여성이 사용하는 언어와 남성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많이 다른 걸까? 한국에서도 여성의 어조와 남성의 어조가 많이 다를까 생각해봤는데, 일상적으로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제외하면 말투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근데 또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지성이 여성인격을 연기할 때와 남성인격을 연기할 때 톤 변화를 생각해보면 아예 차이가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하지만 역시 일상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이야기는 메구미가 여동생 가즈미를 데리러 가면서 시작된다. 여동생은 전도유망한 약혼자를 두고 나이 많은 유부남 박사와 사랑에 빠져 삿포로 인근의 H시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불륜 소재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온다 리쿠 작품을 포함해서 불륜 소재가 정말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렇게나 일상적으로 많은 가 싶다. 

 메구미는 여동생을 데리러 갔다고 하지만 사실 가즈미가 사랑에 빠진 박사, 와카쓰키 사토시가 연구 중이었다는 ‘클레오파트라’에 관심이 있다. 과연 클레오파트라가 무엇인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며 천연두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에 사멸된 먼 옛날의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에 인용된 점에 호기심이 생겨서 조금 조사해봤더니 역사적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바이러스였다. 

 치사율과 발병률이 높은 질명이었지만 여러 연구와 백신 개발을 거쳐 1980년 5월, WHO에서 박멸을 선언했다고 한다. 책 내에서 세계에서 아직 두 군데,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작품 내 설정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네 곳에서 바이러스를 보관하고 있다가 두 군데에서 중간에 바이러스를 파기했다고. 지금도 러시아와 미국에서는 바이러스를 보관하고 있으며 바이러스를 연구하다가 유출된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망한 사람 부분은 루머인지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WHO의 박멸 선언 이후 백신은 더이상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이후 종두접중을 중단해 현 인류는 천연두 바이러스에 전혀 면역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천연두 바이러스 유출, 또는 바이러스 무기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음모론과 우려가 실제로도 나오고 있다고 하며 이 소설이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2002년에 그런 주장들이 두드러졌던 모양이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이슈와 1934년, 삿포로에 실제로 괴멸적 피해를 입힌 대화재를 연결시켜 이 소설의 큰 미스터리가 완성되었다. 비밀이 풀려나가는 과정이 부드러워서 충격적이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작가적 상상력이 대단하다. 

 간바라 메구미가 무척 유능하고 얄미우며 배후의 흑막처럼 묘사되었던 메이즈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여동생 가즈미에게 계속 물을 먹는게 재밌다. 상황에 휘둘리는게 답답하면서도 인간미있게 느껴졌다. 온다 리쿠 특유의 여러 겹으로 쌓인 미스테리가 풀어져가는 과정도 즐겁다. 처음엔 메구미가 왜 이 곳에 왔는지 궁금하고, 가즈미의 말에 동요하는 메구미를 보며 메구미의 진심이 궁금하고, 가즈미가 추리한 메구미의 정체와 클레오파트라의 진실을 추적하며 갑자기 들이밀어지는 사토시 박사의 죽음의 진실과 반전의 반전들까지. 여러모로 온다 리쿠다웠다고 생각한다.

 냉동귤 이야기는 온다 리쿠 작품에서 두어 번 더 나왔던 소재다. 단편집에는 직접적으로 이 소재를 주제로 한 글이 실리기도 했는데,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것이 아슬아슬한 우연과 행운의 결과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오싹하다. 아마, ‘1001초 살인 사건’에 실린 단편이었던 것 같은데 단편집 결말이 정말 찝찝했다. 

 온다 리쿠 작품은 청소년이 나오는 걸 제일 좋아해서, 엄청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가볍게 읽기에 나쁘지 않고 좋았다. 오랜만에 메이즈도 읽고 싶어졌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