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자궁이 있다! 임신시켜라!"
행정자치부의 의도와는 달리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는 공개되자 마자 비난이 폭주하고 서버는 갑작스러운 폭주로 마비되고 말았다. 출산통계와 출산서비스를 쉽게 알아볼수 있게 한다는 이 서비스중 가히 최악은 '가임기여성분포도'였는데 아무래도 누구나 알고있지만 누구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이야기를 하고싶었던걸 들켜서였을것이다.
결국, 임신과 출산등의 모든 일들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고, 편하게 살고싶어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들을 비난하고 싶고 대중이 만들어놓은 결혼적령기, 가임기 여성이지만 그 책임을 회피하는 여성들에게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과 도태된 인간이라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전쟁에 참여하는것이 여성이 출산과도같이 었을때도 있었다고 한다니까.
지난 정권에는 전략적으로 TV나 드라마를 통해 학력저하결혼을 유도하라는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한번도 성희롱을 당하지 않았다거나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여성은 항상 가슴과 자궁으로만 평가가 되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본 젊고 싱싱한 육체는 가슴으로 평가되었고, 성숙해진 다음으로는 아이를 낳을수 있냐 없냐, 있다면 얼마만큼의 아이를 나을수 있냐, 얼마만큼의 아이를 낳고 나선 그 아이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로 키울수 있냐 없냐의 문제로 평가되곤 했다.
이 책은 비록 이 숭배가 진정한 의미의 숭배라기 보다는 감당할수 없는 일을 거의 혼자 감당해야하는 여성을 달래기 위한 표현에 가깝지만 출산을 할수 있는 '몸'이라 숭배받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는 '맘충'으로 그 아이를 다 기르고 나선 '아줌마'나 '김여사'로 혐오받는 여성의 삶에 대해 서술 하고 있다.
[재생산에 관하여]라는 책에서는 여자라면 반드시 아이를 나아야 한다는 생각을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주변의 아이에게 희생하지 않는 여성을 인생에서 여성으로서 누릴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인간인것 마냥 표현하는 사회에서 '태어나지 않는것이 어쩌면 더 행복일수도 있다'는 명제는 잔혹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대다수가 남자인 모든 위대한 남자들곁엔 그를 위해 희생하고 착취당해준 여성이 있으며,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부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도 '이자리가 내가 있을곳이 아닌것 같다'라고 느끼는 "가면증후군"을 겪는다고 한다. [숨어있는 자아]라는 책에선 15세기의 잔다르크부터 19세기의 나이팅게일까지,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올브라이트 장관까지도 가면증후근으로 고통받았던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11세기에 여러방면으로 능력있었던 수녀 힐데가르트는 "내가 한일이 아니고 신이 한 일"이라고 둘러댄 덕분에 버틸수 있었다고 한다.
비난받고 사랑받고 혐오하고 숭배하는. 그 모든일의 책임은 사회속에 '몸'으로 존재하고, 재생산의 '도구'로서 평가받고 싶지 않은 여성에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