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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 서재
  •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 그렉 올슨
  • 13,320원 (10%740)
  • 2018-10-05
  • : 310

사람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이미 일어난 일을 지워버리진 못해.


당신은 인생이 걸린 중대한 시험을 앞두고 늦잠을 잤습니다. 서둘러 시험장으로 가려고 급히 차를 출발시킨 순간, 실수로 이웃집 소년을 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A) 구급차를 부른다

(B) 소년을 차고에 숨겨놓고 시험을 치러 간다.


도덕 시험이나 설문지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A)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리즈도 틀림없이 (A)를 골랐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밤새워 공부하느라 각성제에 취한 상태였던 데다가 극심한 패닉에 빠진 리즈는 (B)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야 만다.


겁에 질린 리즈가 시험을 중도 포기하고 돌아오니 경찰들이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이웃집 소년 찰리의 엄마이자 리즈의 친구인 캐롤이 아들의 실종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리즈는 귀가한 남편 오웬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스타트업 회사의 상장을 앞두고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해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던 오웬은 아내의 치부가 공개되어 자신의 야망이 좌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리즈와 함께 찰리의 시신을 유기하고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그러나 금방 발견될 줄만 알았던 찰리의 주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부모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와도 같았던 아들을 잃어버린 옆집 캐롤과 데이비드 부부는 불화 끝에 별거하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남편까지 끌어들이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수를 선택하지도 못하는 리즈는 강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술과 안정제에 의존하게 되고, 찰리의 실종을 계기로 평화롭게만 보였던 마을과 가정에 내재된 균열과 갈등의 씨앗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보통 '심리 스릴러'로 분류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스릴러'보다 '심리'에 방점이 찍힌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숭고한 양심에서부터 추잡한 이기심에 이르기까지, 인간 내면세계의 스펙트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재미난 인류 생태학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만약 당신이 지구인을 연구하려는 외계인이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인간 군상의 심리는 무척 흥미롭다. 실수로 친구의 아들을 치고 괴로워하며 남편에 대한 의리와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리즈. 아들을 잃어버린 자책감에 하염없이 그날의 기억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실낱같은 희망과 밀려드는 절망 사이를 오가며 곁에 있어주는 대신 일에만 매달리는 남편을 원망하는 캐롤. 때로는 속물적이고 불성실한 가장이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데이비드. 자기애의 화신으로 성공을 열망하며 자기 앞길을 막아서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려 드는 오웬. 날카롭고 사무적인 것 같지만 판단력이 뛰어나고, 은근히 정도 많은 에스더. 다양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통해 이기심과 양심, 인간다움의 기준을 논하고자 한다.

 

작중에서 리즈, 오웬, 데이비드는 한 번 이상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인간성을 시험받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리즈의 마지막 선택은 오웬의 태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인간다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리뷰 첫머리에서 인용한 구절처럼 이미 일어난 일을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다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올바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는 있다.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감안하면, 그것이 결국 인간다운 삶의 필수 요건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총평하자면 몰입도가 높고 가독성도 좋아 한 번 잡았다 하면 한달음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다. 악의에 가득 찬 살인마가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서스펜스 스릴러와는 달리, 뜻밖의 사고로 가해자가 되고 만 리즈와 자식을 잃어버리고 자책하는 캐롤에게 이입해 안타깝고 애타는 심경으로 읽게 된다. 냉철한 이성과 분석보다는 뜨겁고 먹먹한 감성으로 읽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작가의 인간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이 엿보이는 '인간적인 스릴러'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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