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작을 맞이하며 한 권의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은 『나는 왼손 피아니스트입니다』, 저자는 피아니스트 이 훈이다. 그는 본래 촉망받는 연주자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왼쪽 뇌의 60%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겪었다. 그 결과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고, 연주자의 삶을 이어가는 길은 단절될 듯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나는 단순히 회복 탄력성이라는 교과서적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저자의 길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걸어온 시간은 거칠고 힘들었지만, 글 속에서는 놀랍도록 담담하고 따뜻하게 다듬어진 숨결이 흘러 있었다.

“그때의 내가 할 일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상황,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매일과 순간을 인내하고 인정하는 것뿐이다.” (p.47)
짧은 두 줄의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좌절과 회유, 끝없는 부정과 받아들임이 교차했을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를 부정하고 싶었을 저자가 그 시간을 ‘인내와 인정’으로 담담히 적어낸 모습은 오히려 고독과 외로움의 깊이를 더욱 짙게 느끼게 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원망하고 탓하고 싶었던 마음을 어떻게 저자는 인내와 인정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본디 저자가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이런 의문 속에서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무력감은 잘하던 일을 더 이상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상실감은 일상적인 행동마저 가로막힐 때 찾아온다. 저자에게 오른손은 목표 의식과 성취가 빛나는 시기를 상징했다. 화려한 연주 무대와 도전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수술 이후의 삶은 마치 피아노의 왼손과 같았다. 묵직하고, 느릿하며, 속도를 맞추며 조화를 만드는 중저음의 세계. 그는 그 세계를 몸으로 받아들이며 성숙한 거절과 수락의 과정을 글 속에 담아냈다.

왼손으로만 이루어진 연주에서는 때때로 흐름이 끊기고 명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이 새로운 매혹으로 다가왔다. 연주의 공백과 흔들림은 오히려 삶의 울림을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작곡가의 악보를 넘어 삶 전체를 해석하는 듯한 저자의 태도는, 한 사람의 연주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보여준 뚝심과 넓은 시야였다.
읽는 내내 그의 어머니가 책 속 작은 방 안에 앉아 있는 듯했다. 슬픔을 속으로 삭이듯, 약하고 느리게 그러나 단단히 아들을 지탱하는 모습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짧지만 절절한 울림은 독자인 나에게도 전해졌다.

이 책을 통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왼손 연주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의 ‘왼손들’, 즉 보이지 않게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꼈다. 화려함이 사라져도 삶은 여전히 빛날 수 있음을, 결핍 속에서도 울림은 더욱 깊어질 수 있음을 이 훈의 에세이가 증명해 주었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음악처럼 조율해 나가는, 한 인간의 용기와 겸허함이 담긴 기록.
책장을 덮고 난 후, 나도 나의 왼손들을 더 귀 기울여 듣고 감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