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을 읽고 난 후, 마음속에 남은 침묵에 대해
‘그 시절을 살지 않았지만, 그들의 침묵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흘러가는 지금, 말은 넘쳐 나지만 진심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아니, 하지 못했던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이.
말 없는 서울, 1979년의 풍경
『계엄』은 1979년 유신 체제 말기의 서울을 배경으로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일본에서 온 강사가 서 있습니다.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당시의 서울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군사 정권”이라는 단어 너머의 감정과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조용합니다. 드러내 놓고 시대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눈치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긴장과 숨죽인 감정이 묵직하게 전해집니다. 그 무게는 오히려 시끄러운 고발보다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군대와 징병제, 침묵의 무게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제는 ‘군대, 징병제’입니다. 특히 한국 남성들의 군 경험이 얼마나 깊은 침묵 속에 묻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군대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말을 멈추는 남편, 농담처럼 시작했다가 씁쓸하게 끝나는 지인들의 표정. 그 낯익은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굴욕, 고립, 복종, 폭력, 체념. 누군가는 그냥 지나온 시간이라 말하겠지만, 그 침묵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침묵했고, 우리는 그 침묵을 너무 쉽게 지나쳐왔던 건 아닐까요?
모순된 감정,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에 대한 그리움
소설 속 인물들은 고통스럽던 군 시절을 때때로 그리워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왜 이해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눈물 삼키던 시절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모든 고된 시간엔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나 봅니다.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그럼 죽지 뭐”라고 답하던 시대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소설 속에 잠시 등장합니다.
그 시대 청춘들의 허무함, 말하지 못하는 절망이 농담처럼 툭 튀어나온 그 대사에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한 질문이 오갑니다. "왜 사느냐"고 묻는 사회, "그냥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하는 청년들.
세상은 바뀌었지만, 청춘의 답답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일본을 멀리하면서도 닮아간 우리 사회
또 하나 눈에 들어왔던 건, 한국 사회가 겉으론 일본을 강하게 배척하면서도 그 문화와 언어, 시스템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 유신” 같은 말이 일본 메이지 유신에서 온 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알고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표면적인 반일 감정과 무의식적인 동경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모순을 외면해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40대 주부로서,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
『계엄』은 단지 정치나 역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저 같은 사람도, 특별한 배경 지식 없이 그 시대의 공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제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조금 더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암기가 아니라 공감이어야 한다는 것.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계엄』은 침묵을 이해하게 만든,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책이었습니다.
그 침묵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 우리의 사회 속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선두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지식인인 학생입니다.
나는 그때 다시 한번 한국과 일본 대학생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 P143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만남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결정적이라 요령껏 지식과 정보를 나의 내면에 수납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한국인이 민족이든 역사든 거대한 관념과 씨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하지만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고 머뭇거렸다. 관념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꾸만 멀어져갔다. p292~293
나는 한국에 와서 ’학생의거‘라는 말을 배웠다. 1919년 파고다공원 앞에서 조선 독립 시위 행진을 시작한 시민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들. 많은 의생자를 낸 운동이었지만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금 의거로 순국한 애국자로 추앙받는다. 1929년 광주보통중학 소년들도 식민 지배의 굴욕에 분노하여 의거에 몸을 던진 사람들로 인정받는다. - P144
독도는 이제 실체를 잃어버린 채 편협하게 관념화되었다. 그 관념에 봉사하기 위해 짧지 않은 세월을 희생한 홍기철에게 동정을 느꼈다.
- P140
그가 인생을 다 써버렸다기보다는 인생이 그를 다 써버린 셈이다.- P233
이럴 바엔 하루 동안 계엄령하에서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보자.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군대가 시내에 주둔한다는 것은 반어적 의미로 치안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평소보다 두 시간 빨라진 통행금지를 염두에 두고 ‘구경(관광)에 충실해보자. - P263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만남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결정적이라 요령껏 지식과 정보를 나의 내면에 수납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한국인이 민족이든 역사든 거대한 관념과 씨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하지만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고 머뭇거렸다. 관념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꾸만 멀어져갔다.
- P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