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안 하는 게 더 편한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귀찮음을 무릅쓰게 만드는가. 나의 오랜 탐구 주제였다.
- P75
너의 주저함을 너무 좋아한다는말을 꼭 하고 싶었어. 주저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있잖아. 열심히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너의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왔는데, 그것도 알고 있니? 내가 거의 올해의 문장으로 뽑고 싶을 만한 것을 너는 썼지. "우리는 꼭 마지막이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너는너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천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 P92
그러니 스스로에게 훨씬 더 관대해지면 좋을 것 같아. 야무지고 부지런한 자신에 대해서 말이야. 사느라 수고가 많아 혹시나 힘에 부치면 언제든 덜 열심히 살아도 된다는 걸 기억해줘.
*열여덟 살 정혜원에게
스물다섯 살 이슬아가 사랑을 담아
- P128
우리는 예능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유튜브 영상 클립 등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극적인 비극을 본 뒤에도 대체로 별 탈없이 일상으로 복귀한다. 숱한 미디어콘텐츠가 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은 어제의 내가 변함없이 오늘의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화 역할을 한다. 라캉은 이런 안정화를 비난했다. 안정화란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착시키는 부정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에서는 그걸 ‘살균된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진정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의 존재를 뒤흔든다. 원래 자리한 위치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고 방황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 P142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 P143
그 여자애의 글 속에서 한 교사는 화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A가 예전에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서 아픔이 많아. 너네가 잘챙겨줬으면 좋겠다."
그 부분을 읽고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이 진짜로 이렇게 말했다면, 정말 경솔했던 것 같아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는 자기가 가진 정보를 신중하게 선별해서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한 아이의 사정을 다른 아이에게 허락 없이 노출시켜서도 안 되고, ‘왕따‘와 ‘아픔‘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간단히 한 문장에 정리해서도 안 됐다. 생각나는 것을 죄다 말하지 않는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 P153
있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P210
응미 선생님과 응숙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녹슨 몸을 실감하지 않고도 배워볼 수 있는 게 글쓰기인 것 같다고. 마음을 잘 정돈해보고 싶어서 이 글쓰기 수업에 왔다고.
- P222
일곱 명의 아이들이 적어낸 일곱 개의 다른 머릿속 그림을 보며 나는 그들의 이름과 표정과 글씨체와 문장을 외운다. 수십 개의 질문과 함께 글쓰기 수업이 출발하고 있다. 글쓰기는 변화를 다루는 예술이며 변화는 질문 없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 P245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친구다. 지구라는 한 달걀 안에서 안부를 물으며 살아갈 것이다.
-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