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매점 블라인드 설렘 독서모임 2월의 또다른 책, 카사바칩. 먼저 읽은 2월 설렘 책 <봄이 오면 녹는>을 완독했을때만 해도 여운이 너무 짙어, 카사바칩을 사랑하게 되리라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세상에. 지치지도 않고 자기 세계에 사는 사람들. 눈물날 정도로 답답한 사람들. 이 어처구니없으며 한편으로는 부러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 이 책을 읽던 때엔 입원중이었다. 입원중 어두운 책을 읽고 더 힘들었던 몇 번의 쓰린 경험이 있던지라, 이후 입원중에는 쉽고 따뜻한 책을 읽자는 나만의 원칙을 세웠었다. 카사바칩 앞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무거운 건 아닐까 (물론 그 때도 엄마 미선과 주인공의 똘끼는 분명히 드러나 있었지만)했는데, 이 책은 눅눅한 카사바칩이 아닌 바삭한 카사바칩이었다! 최적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책. 그렇다고 마냥 쉽다는 건 아니고 또 따뜻하진 않다. 이 깊음과 경쾌함의 콤보라니.
🍿사실 가족의 연쇄 파산이란 소재가 얼마나 무거운가. 아빠가 답답하고 너무하게도 엄마의 서류상 파산으로 다시 파산했다는 앞 부분에 이해가 되면서도 울컥했다. 그런데 엄마가 피해자라고 할 수 없는 게, 엄마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요, 딸에게 파산을 넘긴다. 물론 이미 대출을 할 수 없던 자신들의 상황이지만, 그쯤 되면 합리적인 길을 모색할만하지 않은가. 아,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딸내미는 철 없이 오늘만 대충 사는 느낌이랄까. 과거 아주 오랜 시간 하루 하루 힘겹게 악착같이 버티면서도 어떻게든 빠져나오고자 간 버리고 살아간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일까. 왜 이리 이 가족들은 미성숙한건가 하며 복장터지며 읽었는데, 결국엔 이 가족 모두를 사랑하게 되다니. 하... 나, 진짜..
🍿 그리고 카사바인형.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위해, 가족을 위해 떠날 때 내가 두고 갈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니 애초에 왜 떠나는 거야. 떠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건가. 그러면서도 나를 모르는 어딘가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상반된 생각도 같이 든다. 혹시나 그러면 꼭 삶을 리셋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막연한 믿음.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금, 여기‘가 많은 것을 내게 주었겠지. 레무는 태어난 곳이 인생의 많은 걸 결정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말을 예전 어떤 강연에서도 들었다. 그러니 내가 잘나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만큼 성취했다는 말은 삼가야한다고. 그렇다, 삶은. 그러니 레무는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왔으며, 그럼에도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려 하는 걸까.
🍿 레무의 고향 같은, 아빠의 인쇄소 골목같은 나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이 세계에서 버티는 당신도, 또 다른 세계로 탈출 혹은 떠나는 또 다른 당신에게도 우리가 스치는 그 시간이 호의와 다정함으로 응원할 수 있기를. 서로가 남긴 좌표를 잘 찾아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아, 카사바칩은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과자라고한다. 언제 바삭한 맛을 맛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