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 P14
이 남자와 눈을 마주친 첫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눈에 담긴 다정함이다. 마치 상냥함이 넘쳐흐르는우물이 있을 것만 같은 눈이었다.
- P20
이 남자의 뒤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이 사람이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며 살다 왔든 우리 둘은 17년간(이 남자에게는 조금 더 길거나 짧을 수 있겠지만)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둘의 삶이 어떤 이유에서든 교차하고 있었다.
- P24
그는 좀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과거를 돌이키는 일은 그보다도 없었으며,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경탄하는 사람이었다.
- P29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려고?"
내가 물었다.
"어디든 상관없어." 그가 대꾸했다.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잖아, 안 그래?"
- P30
그러니까 아니었다. 내게는 이곳이든 저곳이든 똑같이 좋은 게 아니었다.
- P32
나를 감싼 윌의 거대한 품에 비하면 아빠, 이모부, 권위, 공중도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변의 거대한 산들도, 이 일이 불러올 결과마저 무의미할 만큼 하찮아 보였다.
- P40
나는 파멸의 집요함이 어떤 것인지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 P53
기억을 돌이켜 보면, 본성이 선한 오빠는 옛날부터 제각기 흘렀던 우리 가족의 개울을 하나의 강으로 통합하는 합류점이었다.
-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