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으니까.
- P19
"하쿠 상은 좋겠다. 좋아하는 거 다 말할 수 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되묻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걸 그룹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두 가지로 반응해.
첫째는 ‘네가 여자가 없으니까 그러지고, 둘째는 ‘네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야."
- P21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는 걸 감추고 싶었다.
- P21
물론 해진은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표현된 반도의 어디쯤이겠지만, 그 축척에서 해안선은 너무 단순해 아무래도 영록이 섰던 해변을 그려볼 수가 없었다. 그 해변에 한 번은 닿아야만, 두 발을 모래밭에 디뎌봐야만 할 것 같았다.
- P31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먼바다는 잔잔하게만 보였다. 수평선은 단호했다.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는 내가 살던 일본. 그 건너의 건너편에는 또다른 얼굴들. 그모두를 잇는 커다란 바다.
- P36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 P37
하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을 세상에 얼마나 더 줘야 할까. 이것은 투자와 수익의 문제일까. - P43
이를테면 그 블로그는 섣불리 사버린 선물과 수신인을 잃어버린 편지, 고장난 장난감과 짝을 잃은 액세서리의 수납함, 고대의 맹희가 건축하고 현대의 맹희가 낙서하는 사적인 유적지였다.
- P46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37세의 삶에 신파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미성숙일까.
- P51
우엉은진지하게 들어줬지만 물론 그에게도 그의 이유가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정중해, 우엉 당신, 거절도 마음에 들게 하네. 다만 이제 산 아래로 바위가 굴러떨어질 차례.
- P66
속을 보이면 어째서 가난함과 평안함이 함께 올까. 그날 ‘맹이의 대모험‘이었던 블로그 이름이
‘돌멩이의 대모험‘으로 슬쩍 바뀌었고,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구르더라도 부서지진 않았지.‘
- P74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집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 P76
결국 모두가 헤어질 이유는 많고 계속 만나야 할 이유는 적었다.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