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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T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12,600원 (10%700)
  • 2019-06-24
  • : 59,413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도서명은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다. 단편을 읽으며 때로는 스쳐서 지나가듯이 읽었고 특정 부분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향수에 잠시 멈춰 섰다.


개인적으로 4개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여행, 소유, 맥락, 하이퍼텍스트]라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키워드들이었다. 하지만 왜 이런 키워드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침잠해 들어가 스스로 의미를 캐어보니 답이 나왔다.


각 단편에서는 사회에서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마치 영웅과도 같이 동시에 존엄을 간직하기 위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동시에 온전한 타자로 남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동시에 세계를 남기기 위해, 남겨진 자로 돌아가기 위해 동시에 맥락을 되찾기 위해, 무언가를 회복하기 위해, 온전한 대상을 찾기 위해 동시에 미해결과제를 끝내기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동시에 사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삶을 영위하면서 맥락의 범람 속에서 살아간다.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누구인지 알게 되고, 타인에 대해 알게 되고, 세상에 대해서 이해한다. 그런데 어째서 타인과 외부 세계를 바라볼 때 맥락을 베어내어 텍스트로, 때로는 하이퍼텍스트로 바라보려 하는 걸까, 삶이란 그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인데...


이번 김초엽 작가의 저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 이야기에는 주체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듣는 객체들이 존재했다. 


주체가 제공하는 맥락을 듣지 않은 채, 그 대상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을 때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쉽게 카테고리화할 수 있는 혹은 이진법으로 전산상에 올릴 수 있는 무기질과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주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순간, 그의 세계가 남아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데이터로 변환할 수 없는 온전한 그의 세계가 말이다.


그리고 객체들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대사를 통해 드러낸다.


책은 7개의 단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2) 스펙트럼

3) 공생 가설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5) 감정의 물성

6) 관내분실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을 때는 붓다와 Ajatashatru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출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래'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 안전했던 곳을 떠나 탁 트인 황야(혹은 들판)으로 나아간다는 것...... 각각의 메타포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처음 보는 내용임에도 익숙함을 경험했다.


'스펙트럼'에서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 주체가 떠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세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공생 가설'에서는 우리의 곁에 있었으나 인식하지 못한, 혹은 인식하고 있지 않으려고 한 존재들에 대해서, 동시에 현시점에 대입해서 존재가 아닌 투명인간으로, 서비스로 남아버린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기술의 진보가 남겨 놓고 소외시킨 이들, 버려진 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주체의 객체의 대사를 통해 '나도 소수인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정의 물성'에서는 Roger의 '자기-일치'와 소비에서 '의미의 구입'이라는 개념이 소멸되어도 소비는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관내분실'을 읽을 때는 페이지를 천천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경험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의 누구'로 존재했던 이에 대해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도저히 풀 수 없는 미해결과제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을 다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다른 단편들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사한 일을 경험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각 이야기는 머나먼 시공간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지금 그리고 여기'의 이야기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중 아무도 절반이 넘게 남은 꽃다발의 의미를 말하지 않았을까.- P13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오스카가 그런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역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P19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P49
그림을 그리는 데에 삶의 모든 시간을 쏟기에는 루이의 수명은 너무 짧았다. 그렇다면 그림은 그들의 짧은 생을 다 바칠 만큼의 의미가 있어야 했다.- P85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P177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P187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P215
삶은 단절된 이후에도 여전히 삶일까.-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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