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과학자는 시민으로서의 책임 외에 특별한 의무도 지닌다. 과학 연구 자체에 맞서야 한다는 의무다. 아무리 미미하다고 해도 파국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면 그 실험은 피해야 하고, 동물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윤리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자신의 발견이 윤리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대중과 연계해야 하며, 그런 한편으로 자신이 전공 분야 바깥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 온 더 퓨처 ON THE FUTURE PP.280~281 희망과 두려움의 공유 中
보통 사람들은 거대 담론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거대 담론의 자체적 문제이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각 부분에서 모순이나 결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인 마틴 리스, 역시 스스로 방대한 주제를 다루겠다고 나서면서 전문가들조차도 예측 능력이 형편없었다는 점을 염두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그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담론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을 계산해볼 때 담론의 제기는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한 담론의 효과는 철학자인 푸코에 의해서도 밝혀진 바가 있다.
저자는 5개의 챕터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챕터1. 인류세 시대의 위협
챕터2. 지구 인류의 미래
챕터3.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류
챕터4. 과학의 한계와 미래
챕터5. 과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개념의 확장을 역설(力說)하며 현재까지의 진보에 있어서 과학과 기술의 역할을 말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 낙관론자(techno-optimist)라고 밝히지만 동시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의 가능성,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책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 진행에 있어서의 균형을 걱정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온 더 퓨처를 읽을 사람은 꼭 서문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11페이지라는 얼마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287페이지에서 다룰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저자는 생명과 우주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과 직면한 위험에 대한 우려를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 갬블 용어처럼 '판돈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경제학자로 이루어진 '코펜하겐 컨센서스 (Copenhagen Consensus)'에서 '표준 할인율'을 적용해서 2050년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아예 논외로 친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는 망치로 뒷통수를 냅다 맞은 느낌이었다. '할인율'이란 경제학이나 행정학을 조금 공부해보거나 관련 서적을 조금 읽어보면 들어보는 개념이다. '할인율'을 쉽게 설명하면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와 같게 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할인율이 일정할 경우, 즉 '표준 할인율'로 계산할 경우 비용과 편익이 발생하는 시점이 멀면 멀수록 그 현재가치는 작아진다. 그런데 과연 기후 위기의 가속성을 고려해볼 때, '표준 할인율'을 적용한다는 것이 가당한 것인가? 저자가 이에 대한 역설적 사례와 비유를 들고 있으니 이는 읽어보기를 바란다.
요즘 한국에서도 논의의 주제로 잡혀있는 '원자력'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다양한 4세대 원자로 개념에 관한 연구개발에 대한 장려가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설계는 1960년대나 그 이전에 나온 것을 지적하며 몇몇 제안을 한다. 다만 '대규모 주민 이주'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
생명공학 분야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유전체 서열분석의 비용의 급감을 인상적인 추세로 제시한다. 이러한 기술 접근에 대한 비용감소는 '딜레마'를 야기한다. 정말로 자신이 '어느 시점에', '어떤 질병에', '몇 %의 확률로'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유전자 합성과 관련해서 Craig Venter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바다출판사에서 출간된 '인공생명의 탄생 / 크레이그 벤터'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법적·윤리적·기술적 문제와 한계에 대해서 논의되어야 하는데 - 예를 들면 'triple baby'의 경우 친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과학·기술은 폭주기관차와 같이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더이상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전반을 뒤흔들 문제인데도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다.
강렬한 수명 연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업 경영자들이 '젊은 피'를 수혈하지 않나, 당뇨병 치료에 사용되는 메트포르민이 치매와 암을 막아준다는 주장으로 인기를 끌지 않나, 태반 세포의 혜택을 찬미하지 않나...... 돈을 쥐고 있는 곳은 언제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사법농단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법감정과는 동떨어져 있는 재판의 결과를 여러번 경험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판사'에 대한 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청원'이 반복적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논의를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인공지능이 학습을 할 데이터가 산재한 디지털 플랫폼은 혐오와 극단적인 사건들로 도배되어 있다는 문제도 있으며, 과연 지금의 판사들보다 사회경험을 하지 않은, 아니 사회경험을 전혀 하지 않은 인공의 대상들이 내리는 판결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
현재 우리는 수감 기간을 선고받거나, 수술 권고를 받거나, 신용 등급이 하락한다거나 할 때 그 이유를 들을 수 있고, 항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전적으로 알고리듬에 맡겨진다면, 마뜩잖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 밖의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 온 더 퓨처 ON THE FUTURE PP.120~121 정보기술, 로봇공학, 그리고 인공지능 中
이외에도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온더퓨처
#ONTHEFUTURE
#더퀘스트
#마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