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colm Gladwell 신작 “어떤 선택의 재검토”(The Bomber Mafia, 김영사 2022)
[책] 어떤 선택의 재검토 the Bomber Mafia - 말콤 글래드웰의 성급한 결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글래드웰 선생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여 구해 보았는데, 비유하자면 비전문가 출연자들이 골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웃고 즐기는 에피소드를 한편 본 것 같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취미나 여가로 하는 것과 저자의 명성을 후광으로 삼아 출판물 시장에서 큰 물고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책의 기본 줄거리는 영어 제목대로 공군의 태동기에 힘을 얻었던 ‘폭격기 마피아’ 세력, 즉 폭격기를 대량으로 동원하여 공격하면 적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폭격기 만능론, 전략폭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 가운데 2차대전 즈음의 미국 공군(당시에는 육군항공대) 이야기가 중심이다.
노든 조준기라는 탁월한 발명품을 활용하여 낮에 고공에서 정밀폭격을 하였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 경질된 헤이우드 핸셀 장군과 그의 후임자로 야간에 저공 소이탄 공격으로 일본의 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을 대비하는 이야기를 한다.
제목만 보면 마치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어떤 쪽을 택했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고공 정밀폭격이 옳고, 비인도적인 민간인 희생이 다수 수반되는 저공 무차별 폭격이 틀렸다는 것을 논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Norden Bombsight, B-17, 슈바인푸르트 공습, 드레스덴 공습, B-29, 네이팜탄, 마리아나제도, 티니안, 커티스 르메이.. 와 같은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다니다가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의 중반부 어딘가에서 길을 잃는다.
글래드웰은 아마도 책 말미에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의 미공군참모총장 관저인 ‘에어하우스’에서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것 같은 공군 고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2차대전->베트남전->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며 얼마나 정밀폭격의 명중률이 높아졌는지를 비교한다. 현재의 기술이라면 이제는 단 한 발의 폭탄으로 이 건물을 그것도 건물의 특정 위치를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커티스 르메이는 전투에서 이겼다. 헨셀은 전쟁에서 이겼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판단할 사안인지 의문이 든다. 성급한 비약이라고 할 만한 대목이다. 과연 그러한가. 오히려 승자는 결국 발전된 기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헨셀이나 르메이 모두 ‘폭격기 마피아’인 점은 같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보기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싸우려고 했을 뿐이다.
미공군은 폭격조준기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아무리 뛰어난 노든 조준기라도 무유도로 자유낙하하는 폭탄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던 당시의 기술은 한계가 있었기에 르메이는 일부 폭격기가 희생되더라도 저공에서 대량의 소이탄을 던져 불살라 버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르메이에게 JDAM 같은 스마트 폭탄 기술이 있었으면 당연히 그것을 썼겠지만, 그러려면 1970년대 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글래드웰은 시사잡지인 뉴요커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짤막한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것은 탁월하나, 긴 글을 잘 연결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배경을 잘 설명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핵심 정보를 놓친다.
폭격기 만능론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쫓겨난 조종사 클레어 셔놀트를 언급하면서 플라잉 타이거즈의 활약을 설명하지 않는다거나(50쪽, 중국 국민당군을 도와 일본과 싸우는 미국인 조종사로 구성된 일종의 용병대인 플라잉타이거즈의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르메이가 후일 신형 전투폭격기인 FB-111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을 때 “충분히 크지가 않군” 이라고 말했다는 대목(100쪽)에서는 F-111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한 기종이고 특징이 어땠기에 르메이가 작다고 평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F-111은 1960년대 중반 미공군과 해군이 함께 사용할 저공 고속 침투용 전투폭격기로 설계되었으나 결국 해군용은 취소된 공격기로, 쌍발에 가변익인 ‘큰’전투기이긴 하나, 르메이에게는 XB-70 발키리 같은 초대형 장거리 고속폭격기 정도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흥미로운 내용을 단편적으로 열거하다가 너무도 성급하게 결말을 맺는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팟캐스트로 다뤘던 내용을 단행본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던데, 좀 오랜 기간 내용을 보강해서 더 충실하게 책을 만들었거나 아니면 그냥 팟캐스트로 만족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족>
국내 번역 출판사의 ‘마사지 번역’은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는가..내지는 번역출판사가 자의적으로 또는 원저자와의 의견교환을 통해서 -사견으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원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목차를 바꾼다거나 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 역시 원 제목은 단순히 Bomber Mafia (폭격기 마피아) 일 뿐이고,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의역이다.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라는 부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서의 부제목은 A Dream, a Temptation, and the Longest Night of the Second World War)
국내 번역 출판사는 원서에는 없는 소제목을 각 챕터별로 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독자가 보는 것은 저자가 쓴 책의 번역본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번역자(출판사)의 의견이 추가된 한글판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2.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