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코넬리 “변론의 법칙 ” The Law of Innocence>
국내에도 일정한 매니아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 미키 할러” 시리즈 제6편 The Law of Innocence 가 최근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되어 바로 구매하고 감상.
국내에 번역출간된 코넬리의 전 작품을 다 읽어본 나름 팬으로 자부하고 있는 독자로서 이 작가의 강점은 1) 철저한 사전 조사와 배경지식을 축적 2) 최신 트렌드와 시대변화의 반영 3)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균질한 작품을 생산 4) 재미있는 줄거리 전개 특히 마지막 5분에서 벌어지는 반전의 묘미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2020년 나온 비교적 신작인 이 책 역시 배경으로 COVID 감염병이 언급될 정도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드러난다.
그의 소설은 크게 경찰인 해리 보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리즈, 이복 동생인 변호사 미키 할러가 주인공인 링컨변호사 시리즈 그리고 기타 외전들로 대별할 수 있는데, 해리 보슈 시리즈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미키 할러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져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LA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형사전문변호사인 미키 할러를 전통적인 법정소설의 주인공인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돈을 밝히는 속물 변호사로, 세상에는 진짜 무고한 범인은 없으며 적절히 법기술과 수임료를 타협하면서 사는 인물로 설정했다.
2011년판 영화화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 나왔던 배우 매튜 매커니히가 꽤 원작소설의 주인공 이미지에 가깝다. 넷플릭스가 미드로 제작하면서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누엘 가르시아 룰포라는 멕시코 배우는 아직 시즌1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5% 정도 부족한 느낌이 있다.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는 승소 기념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는 주인공이 운전하던 링컨차에 뒷 번호판이 없는 채로 운행 중인 것을 지나가던 경찰이 발견하고 차를 세운다. 단순한 교통법규위반인 줄 알았던 해프닝이 트렁크에서 의문의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한 경관이 트렁크를 열도록 하고, 그 안에서는 미키 할러의 전 고객인 사기꾼 샘 스케일스가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변호사 본인이 의심을 받게 된다. 결국 주인공 자신이 피고인으로 전환되고 직접 자신을 변호한다는 설정인데, 돈만 밝히는 속물변호사가 시리즈를 거치면서 3편 파기환송(Reversal)에서는 특별검사로, 4번째 작품 다섯번째증인(the Fifth Witness)에서는 민사사건을 어거지로 담당하는 역할로 그려졌는데, 6편인 이 작품에서는 피의자/피고인 이라니.. 이건 뭐 법률분야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각각의 역할을 골고루 돌아가며 다 해보는 격인데, 이제는 판사정도 남았다..
대배심, 디스커버리, 배심원 선정, 변호인-의뢰인의 비밀유지특권같은 미국 형사법정에서의 다양한 쟁점들이 자세하게 다루어지고, 주인공이 구금되는 구치소의 풍경이나 바이오디젤과 관련한 연방정부 보조금 횡령사건 등등 재미있는 소재들이 풍족하게 추가되어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은 저자의 다른 작품에 견주어 보더라도 일정 점수 이상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다소 성급하면서도 엉뚱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보실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기로 하지만, 링컨차..시리즈의 공통된 단점이기도 한데,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에서 거의 90%의 진도가 다 나가도록 펼쳐놓은 사건이 수습이 안되어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금해지던 순간, 외부 요인에 의한 결론을 가져와 성급하게 마무리가 된다.
마지막 부분 에필로그 역시, 작가 특유의 마지막 5분전 반전이 장점이긴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안 넣었어도 되었을 내용이 아닌가 싶다.오히려 반전을 위한 반전, 반전에 대한 기대를 하는 독자들의 기대에 대한 강박이라고 보아야 할 수준이다. (하긴 아무리 속물 악당 변호사라고 해도 자기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시신이 나왔다는 이유로 바로 빼박 강력한 용의자로 취급되고 구속상태로 자기 변론을 한다는 기본 구도 자체도 좀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다.)
링컨차 시리즈의 공통 요소이기는 한테, 여기서도 RHK가 붙인 번역제목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제목 “변론의 법칙”은 맥락에도 안 맞고 줄거리에도 연관이 없는 영 이상한 느낌이다. 영어제목이기도 하고 본문에도 나오는 “결백의 법칙” law of innocence,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다>의 맥락을 살려 ‘결백의 법칙’이라고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률용어 번역은 대체로 큰 지장없이 이해가 가도록 옮겨진 편이나 한가지만은 지적해야 겠다. “그녀는 지방검찰청이 편견을 갖고 제기한 공소를 취하할 것이고 체포기록은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542쪽) withdrawing the charge with prejudice를 이렇게 옮겨놓다니... 많은 법률 배경 소설을 소개한 베테랑 번역자와 출판사가 이렇게 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소설로 주변에 추천할 만하다. 꾸준히 작가의 작품을 번역출간해주는 출판사에도 감사하다. (2023.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