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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난적님의 서재
  • 위대한 독재자와 전투기 조종사
  • 블레인 하든
  • 24,300원 (10%1,350)
  • 2022-12-28
  • : 55

1953년 9월 21일, 휴전 직후 MIG-15 bis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노금석 북한군 상위(대위)에 대한 책이 나왔네요. 원작은 2015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기업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던 노금석의 인생 역정과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의 생애를 비교하면서 교차 서술하는 형식인데, 냉전시대 스탈린, 모택동, 맥아더, 이승만, 김일성이 등장하는 한국 관련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해외 독자에게는 새로운 내용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식상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김일성과 노금석을 번갈아 서술하는 구조는 새롭지만, 실제 두 사람의 실질적인 접점은 북한 총사령관과 전투기 조종을 하는 초급장교의 간극만큼 멀다고 하여야 하고, 귀순 이후 노금석은 미국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멀리하며 지난 70년의 시간을 미국인으로 살려고 노력했었기에 김일성 체제가 공고화되는 6.25 이후의 북쪽의 상황과 노금석의 일생을 병렬적으로 대비하는 기본 구조는 100%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한국전쟁기 항공전, 미공군과 이에 대응하는 공산측의 치열한 공방에 대하여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은 장점입니다. 


한국전 초반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북한지역 상공을 활보하던 미군기의 활약(융단폭격)과 공산군의 폭격에 대한 공포. 그리고 MIG-15가 등장하면서 B-29 편대가 마주한 충격과 전술의 변화가 생생합니다. 1951년 10월 23일 하루에만 출격한 9대의 B-29중 6대가 격추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은 척 해야 했던 소련의 꼼수와 이른바 ‘미그 앨리’ 지역에서 주로 공중대결이 이루어진 배경, 그리고 확전을 우려한 미국 역시 압록강을 넘어 중공 지역에서의 공중전을 금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용감한 미군 조종사들이 만주까지 넘어가 전투를 벌이고 이러한 전과를 대외적으로는 숨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952년 봄 부터는 압록강 이북 전투금지라는 교전수칙을 무시하고 세이버 조종사들이 미그를 사냥했는데, 특히 비행을 마치고 기지에 착륙하는 적기를 공격하는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노금석이 귀순을 시도할 때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륙한지 17분 만에 휴전선을 넘어 김포기지 부근에 도착했는데 미군/한국군은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몰랐습니다. 다른 F-86 들이 착륙 접근을 할 때 활주로의  반대 방향으로 착륙하다가 서로 충돌할 뻔 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1976년인가 MIG-25를 몰고 일본 삿포로섬으로 망명한 벨렌코 중위의 망명 사건과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언론에는 "자유의 품을 찾아 귀순하는 미그기를 (사전에 탐지한) 미군 F-86들이 안전하게 에스코트하면서 착륙했다.." 는 식으로  발표되었죠. 


노금석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Kenneth (Ken) Rowe로 합니다. Rowe가 아마 노(로)와 비슷한 발음이라 택한 모양인데, 일제시대 일본식 이름에 이어 한국, 미국 이름을 이어서 가진 그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하네요.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듀퐁, 보잉, 제네럴 다이나믹스, GE, 록히드, 그루먼, 웨스팅하우스, Pan Am 등 굴지의  대기업들을 거쳤고, 이후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의 엠블리-리들 항공대학에서 17년간 교수로 재직하다 68세에 은퇴하였는데, 평생 교포사회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것 같고 가족 간에 대화도 영어를 사용할 만큼 미국에 동화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국내 출판사는 이 번역서의 제목을 왜 위대한 "독재자”와 전투기 조종사라고 했을까요? 원래 제목과 부제는 The Great Leader and the Fighter Pilot: The True Story of the Tyrant Who Created North Korea and the Young Lieutenant Who Stole His Way to Freedom입니다. 


아마 원저자의 생각은 북한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채용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위대한 수령과 전투기 조종사”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위대한 수령은 북한의 표현이지 실제로 위대한 것이 아니고, 위대한 독재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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