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0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2부, 47세 양숙희씨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빠져든 것은.
열다섯 살 다인이가 7명의 아주머니(엄마&엄마의 친구) 들과 몽골 여행을 함께하고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1부는 다인이의 시점으로, 2부는 엄마 숙희의 시점으로 쓰여있다.
처음엔 다인이가 따라간대도 싫다던 엄마가 웬일인지 마음을 바꿔 아이돌 그룹의 앨범과 팬미팅 회비에 화보집까지 얹어 주며 다인에게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한다. 나쁠 것 없는 제안이라 받아들이긴 했다만, 중년 아줌마들 틈에 끼어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자니 영 불만스러운 다인이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 아이돌 그룹 멤버인 지노 오빠를 닮은 가이드 바타르를 보는 순간 로또 맞은 기분이 드는데....... 1부는 자신을 금사빠로 인정한 다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엄마에 대한 불만과 연민도 함께 ㅡ
여기까지는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2부에서 눈물바람을 했다. 다인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
삶은 유한하다. 그것만도 잔인한데 단 한 번이다.
이것은 과연 축복일까.
두 번째 삶이 없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고민한다. 어떻게 잘 살 것인가.
그러나 삶은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주와 자연과 타인의 의지에 내 삶은 습격당한다. 예기치 못한 습격에 차인 몸뚱이가 아프지만 참는다.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니까. 오기를 부린다. 나는 괜찮다고 다독인다. 나는 잘 살 수 있다고,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어떠한 습격에도 흔들리지 않게 준비하리라 다짐한다. 이것이 다인의 엄마, 양숙희의 모습이다.
하지만 생의 습격은 또 다른 형태로 언제든 찾아온다. 같은 형태로 찾아와도 타격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악착같았던 준비와 다짐은 허무해진다. 그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던 숙희는 결국 난기류로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오기를 버리고 진실과 대면한다. 두려워하는 자신을 인정한다. 흔들리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명확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한다.
그래. 난 흔들렸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집으로 가는 마음이 사막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했다.
"엄마, 울어?"
어느 틈엔가 잠에서 깬 다인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거인의 땅에서, 우리 p.233
이 소설은 내게 말한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막막해도 괜찮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
답을 몰라도 된다고. 애초에 답은 없으니.
*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남들처럼, 남들만큼, 남들같이 살면 될까? 그 정도면 눈 감는 그 순간에 아- 이 정도면 잘 살았지. 할 수 있을까? 한데 '그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남들만큼'의 기준은 어디다 두면 될까?
잠깐. 내 인생 잘 사는데 왜 남의 인생과 비교를 할까? 또 잠깐. 꼭 '잘' 살아야 하나? '잘' 이 아니라 '살았다'에 의미를 좀 더 두면 안 될까? 한번뿐이니까 말이다.
소설 속 아주머니들은 내게 그러라고 한다.
'살고 있다'에 의미를 두라고. '어떻게'는 어떻든 상관없다고.
숙희를 포함한 일곱 명의 아주머니들은 모두 '살고 있다.' 각자 다르게.
남편과 이혼하고, 고3 딸과 함께 살지만 딸의 인생은 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여기고 작가로서 자기 삶을 사는 춘희.
아들이 카이스트에 합격한 주희.
딸은 공부를 못하지만 독서논술 교사로 성공해 돈을 잘 버는 인경이.
애들은 유학 보내고 남편은 바람을 피운 명화.
집에서 살림만 하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한 후, 보험설계사가 되었으나 늘 실적 미달이라는 정선이.
말수가 적어 다인이가 그림자란 별명을 붙인 금란이.
엄마의 죽음으로 삶의 궤적을 바꾸고, 문학 대신 공부를 선택해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온 숙희.
복합적인 요소를 갖춘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요약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고 몇 자 적어보기도 했지만 다시 지워버리게 된다. 한 사람의 한 삶을 한 줄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소설 속에 나온 특징들로 요약해 본 나이 마흔일곱의 일곱 아주머니들. 이들을 비교해 누가 가장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가장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5년 후, 10년 후에도 그럴까?
사실 숙희는 아들이 카이스트에 합격해 신임하고 있는 주희를 과거 문학동아리 시절에는 자신보다 못하다 여기고 무시했었다. 말수가 적어 다인이가 그림자란 별명을 붙인 금란은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감쪽같이 숨겨온 습작이 당선되어 청소년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인생은 모른다.
인생에 예기치 못한 습격은 언제나 찾아오며, 아프고 휘청대는 것은 당연하다. 예기치 못한 행운 역시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잘 살기 위해 지나치게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잘' 보다 '산다'에 의미를 두자. '잘' 말고 '어떻게' 살지 고민스럽다면 춘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춘희야, 우짜면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나? 작가는 그래 해야 되는 기가?"
"작가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다.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는 결국 자기 선택 아니겠나."
거인의 땅에서, 우리 p.162
내도, 생겨먹은 대로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