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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단 현상
- 이금이
- 9,900원 (10%↓
550) - 2021-07-15
: 863
내 손에 처음 우리집 열쇠가 주어진 후, 문은 누가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때 나는 열네살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의 씽크대에 서서 쌀을 씻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무언지.
외로움은 공허한 것이고, 서운한 것이고, 불안한 것이고, 맥빠지는 것이고, 느즈러지는 것이고, 시린 것이다.
그걸 온몸으로 느낀 열네살의 아이가 생각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동화집 속 다섯 이야기의 다섯 아이들은 모두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다. 벌이의 의미가 대가성 노동을 넘어 자아 실현인 부모도 있지만, 개중에는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들을 내몬 부모의 자녀도 있다. 우리 부모 또한 그랬다. 아파트는 샀고, 대출금은 갚아야 하고. 모든 게 새 것인 그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은 행복했나? 내 대답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니." 다.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빠는 더 많은 시간 운전을 해야 했고, 장사를 시작한 엄마는 더 많은 시간 가게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위해서였고, 자식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만 중요했지, 자식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뭘 알겠나, 나중에 크면 다 감사하다고 할 거다. 여겼을까?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간들은 새 아파트에 살던 때에 모여 있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지? 무엇으로 이겨냈지? 이야기 속 다섯 명의 아이들처럼 담대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상황들에 각자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그 시간을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강한 녀석들. 가슴 한 켠에 뜨뜻한 것이 뭉클거린다. 모양과 색이 다 다른 그들 각자의 뚝심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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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에 살게 되면 엄마 아빠는 또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계속 바쁘게 구두쇠로 살 테지.'
_<꽃이 진 자리> 중
어차피 부술 집. 재건축이 확정되어 낡은 것을 낡은 대로 두는데다 엄마, 아빠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싫은 소녀. 벚꽃 가지가 늘어진 놀이터 시소 옆 자리에서 열두 살 아이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 한 분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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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만 좋은 걸로 바꿔 줘 봐. 누가 피시방에 가나.'
-<한판 붙어 볼래?>중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자식 하나 잘 키우려고' 도시로 이사온 후 부모님 얼굴을 보기도 힘든 영훈이. 학원이 끝나고 게임을 하기 위해 향한 피시방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 자신을 이름 대신 '촌놈' 이라 부르는 같은 반 실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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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는 거의 날마다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왔다. 말을 하는 사람은 주로 나였다. 나는 현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신이 났다. 어느새 인터넷 금단 현상도 사라지고 다시 오후 시간이 즐거워졌다.
-<금단현상>중
시험을 망치고도 온라인 게임에만 빠진 오빠에게 화가 난 엄마는 인터넷을 끊어버린다. 오빠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효은이는 매일 같은 시간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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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오시는 어머니 비위 하나 못 맞춰 드려서 저렇게 가시게 해야 돼?" 아빠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무슨 남자가 그렇게 비겁하냐? 선재만도 못해. 집안일 하는 게 무슨 잘못이야? 왜 날 못된 마누라로 만들어!" 엄마 목소리가 더 컸다.
-<십자수>중
평소엔 집안일을 잘 분담하던 선재네 가족은 남존여비적 사고방식을 가진 할머니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싸늘한 기운이 돈다. 그 와중에 선재는 여친의 생일에 선물할 십자수 완성에 급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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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고속 도로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같았다. 앞으로도 6년 넘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교 수의학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수의학과에 붙지 못하면 수의사도 될 수 없다. -(중략)-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솔직히 걱정스럽기보다 두려웠다. 내가 공부를 못해도,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걸 이루지 못해도 나를 사랑해 줄까.
-<임시보호>중
하은이와 부모님은 미래의 하은이 직업을 수의사로 정한 10살부터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학군이 좋은 동네로의 이사, 경시대회 출전, 영재 교육원 지원, 유기견 임시 보호까지. 모두 하은이를 위한 것이지만, 하은이의 마음은 불안하다.
ㅡ ㅡ ㅡ ㅡ
이금이 작가님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린다.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며 나는 울고 웃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각각의 상황은 아이들이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 결핍, 단절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그러한 사회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판단한 부모들이 끌어들였다. 그 후 아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던져졌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억울해 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과 숙제를 앞에 두고 그저 꿋꿋하다. 기특하다 못해 미안하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 흠뻑 빠져 읽으면서 한 번, 서평을 쓰기 위해 훑으면서 또 한 번,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군데 군데 또 찾아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을 여러 번 만났다. 정이 들었나보다. 내 직업 외에 엄마라는 직종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신이 이 어린이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전해주겠노라 하면, 나는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달라 하고 싶다. 그 시간이 부모들에게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 매일 잠시라도.
맞벌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클 동안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와중에도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여유를 부모 개인이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은 부모를 노동자로 모시고 있는 회사의 숙제다. 사회의 숙제다. 한 사회의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안정감을 갖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할 수있게 도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들이 어린이였을 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애쓴 더 어른들의 덕을 보고 있지 않나.
모든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을 바라는 건 산 꼭대기에 올라 손톱만큼의 땅을 거저 얻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허황된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가정.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게 해주는 가정.
바로 우리 집부터, 노력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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