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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sopia님의 서재
  • 마음 감옥
  • 앙드레 샤르보니에
  • 11,700원 (10%650)
  • 2017-09-20
  • : 185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 날 것이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이 한 말 중에 하나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적도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그 장면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살면서 하는 90퍼센트의 걱정이 사실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걱정 없이 살 수 없다면 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걱정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인 것이다.

걱정은 두려운 감정을 그대로 녹여낸 일상의 그림자이다. 어둡고 습하고 눅눅하고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나의 생각이 만들어 놓은 나쁜 자기방어 체계이다. 걱정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병이 든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이야 말로 그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할까.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삶들은 물질적인 영역에서 행복을 저울질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생각한다. 진실로 그 무엇이 나를 행복으로 데려다 주는가. 그것은 양면성을 띈다. 일시적으로는 물질적인 만족이 정신적인 포만감을 불러오지만 만족은 한도가 정해지지 않는다. ‘더더더’를 외치며 욕구는 욕망으로 욕망은 타락으로 나아간다.

아들러의 말처럼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인정받기 위해서 물질적인 나눔을 하거나 물질적인 치장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의 정신적 욕구는 가득 채워졌는지 묻고 싶다. 아니, 나의 정신적인 안위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정신은 이원의 세계이다. 정신의 더위와 추위, 높은 곳과 낮은 곳, 삶과 죽음, 사랑과 두려움 등 모든 것은 대립된 짝을 가지고 있다. 자기생각이라는 절대적 진리 밑바탕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감정이 발생한다. 불편한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마 인정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삶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자 나의 마음의 정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잣대가 된다. 사노 요코처럼 ‘그러거나 말거나’를 늘 마음에 새긴다면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최인철 교수의 책 『프레임』에 보면 삶을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세라고 나온다. 이 책에도 우리가 두려움에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나온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 혹은 태도의 변화가 내 삶의 두려움을 강점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그 단어 그 자체에 고립되지 않고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재해석해서 두려움 또한 나를 성장 시키는 발판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 성장 한다. 아이가 일어서기 까지의 한 짝발씩 발을 떼는 것이나 청소년기의 중2병, 사회의 첫발, 군대에서의 첫날밤,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등등 많은 상황에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는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간다. 그 나아가는 발자국이 모여 나의 삶의 자세가 된다.

‘ 무서운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모모’

책 첫 장에 나오는 로댕가리의 『자기 앞의 생』 중 로자 아주머니가 한 말이다. 무서운 건 본능적으로 무서운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본능이다. 그 본능에 이유를 찾기 보다는 내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우물 속 개구리처럼 손바닥에 보이는 하늘만 보지말고 그 넘어의 세상을 향해 나 그대로를 마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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